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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해야 한다《1968년 2월 12일》 by 착선


우리는 개인적 기억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의 집단기억을 통해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을 받아들임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경술국치와 삼일운동, 광복절을 기억한다. 군사쿠데타와 5월의 광주, 6월의 운동을 기억한다. 반대로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소수의 기억일 뿐, 집단기억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1968년 퐁니 퐁넛 마을에서의 하루를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

저자 고경태는 1968년 2월 12일의 작은 마을을 통해 1968년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곳엔 한국군이 있었고, 민간인이 있었다.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있었고, 미군도 있었다. 린든 존슨 미 대통령도 있었고, 박정희도 있었다. 노인도 있었고 어린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수십개의 시체가 있었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 부대가 그곳에 있었고, 총성이 있었다. 1, 2, 3 소대 중 어느 소대의 누가 했는지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배제된 기억이다.

주민-병사 라는 표현은 반드시 두 정체성이 완전히 융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으며, 하이픈으로 연결된 이 정체성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각도에서 다르게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벤 타’ 즉 ‘이편’이나 혁명세력의 이상적 관점에서 보면, 하이픈으로 연결된 사람은 병사였다. ‘벤 타’에서는 이 사람이 ‘벤 키아’, 즉 ‘저편’의 눈에는 단순한 주민으로 비치기를 기대했다. 때로는 ‘저편’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이편’의 관점을 받아들였으며, 이 관점을 왜곡하고 또한 왜곡을 과장했다. 따라서 마을의 모든 산사람과 물건을 군사적으로 정당한 파괴의 목표로 규정했다 - 《학살 그 이후》45~46
같은 생명체끼리 같은 종끼리 서로를 죽인다는 점에서, 수많은 노력을 들여가며 상대와 자신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전쟁은 비극이다. 비극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던가. 비극적인 살육의 현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풍요로운 미군의 PX가 있었다. 아이티와 쿠바에서 외친 절규는 은행을 웃게 했고, 도미니카의 피는 설탕 제조업자의 돈이 되었다. 한국 청년들의 목숨값은 그들의 고향에 풍요의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쟁의 집단기억은 온전히 어둡고 잔인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집단기억의 형성에 비극의 당사자들은 고립되어 있다. 그들은 개인의 기억과 집단기억 사이에서 더 고통받는 것이다.

병사의 마음속에는 증오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전쟁의 이유,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단합된 힘으로 모두 함께 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사실 그들은 총알받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알고 있다. 개개인은 전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오는 오히려 후방에 자리잡고 있다. 병사들은 전투가 미친 짓이라는 점을 분명히 본다. 그래서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알게 된다.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퐁니 퐁넛 마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몸이 찢겨져 우물에 던져진 아이를 기억하는 것이고, 가슴 하나가 잘려져나간 젊은 여성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파병군인들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들을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민족의 용기와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른 민족의 열등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또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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