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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권리《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들》 by 착선


한 환자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교수는 환자를 병명으로 지칭합니다. 그 순간, 인간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병에 걸린 단순한 생명체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접하고, 그만큼 죽음을 접하는 의사들이 의사생활을 버티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 때 한 학생이 용감하게도 환자에게 직접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환자는 웃으며 답해 줍니다. 그 순간, 다시 한 인간이 그 자리에 살아 숨쉽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한 장면입니다.

누구나 죽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에게 판단력과 결정력이 없다고 단정짓고 환자의 삶을 빼앗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 없이 요양원에 보내는 것, 아이의 치료를 부모가 거절하는 것,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주지 않거나 환자와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합니다. 우리는 영화 속의 지도교수처럼, 그 사람이 앓고 있는 병이 마치 그 사람 자체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케슬러는 '죽음의 5단계'로 유명한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제자이자 호스피스 전문가로, 죽음을 대하는 대부분 사람들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죽음과 마주한 사람의 위엄을 손상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책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분명 중환자실적이기보단 호스피스적이지만, 의학적 처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엄 있게 살아야 하듯이 죽을 때도 누구나 위엄을 잃지 않아야 한다. 위엄 있게 죽는다는 것은 삶이 그러하듯이 죽음도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엄 있게 죽는다는 것은 늘 그렇듯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 자신이 된다는 의미다. - p.252
데이비드 케슬러가 말하는 존엄한 인간의 죽음은 환자는 살아 있는 존재로 대우받아야 하며, 어떤 식의 보살핌을 받을지 결정하는 데 참여해야 합니다. 지식이 충분하고 자상하며 배려심 있는 사람이 돌봐줘야 하며, 홀로 외롭게 죽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죽음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아이들도 가족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도록 참여시켜야 합니다. 희망의 대상은 바뀌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며, 완치에서 편안함으로 목적은 바뀌더라도 계속 의학적 처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답습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죽음의 이야기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봅니다. 구의역 사고에서 우리는 죽음이 존엄하기는 커녕 매우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삶은, 죽음이 결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손주와 자식들, 파트너가 보는 와중에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 사랑을 기반으로 한 죽음은 N포세대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존엄하게 대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최소한 죽음만큼은 평등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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