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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조종하는 기술《프로파간다》 by 착선


저자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현대의 선전 분야에 미친 영향력은 굉장합니다. 그에게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선전의 귀재' 라는 수식어를 통해 적어도 그가 얼마나 후대에 영향력이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연방공보위원회에 발탁되어 선전가로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다 전쟁이 끝나자 발빠르게 가장 먼저 홍보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뉴욕에 홍보 전문사무실을 열어 선전을 명실공히 산업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가 구사했던 선전 전략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맡은 일에 누구보다도 충실하고 치밀하다는 점에서 그는 단지 선전가라는 지위에 머무는데 그치기보다 오늘날 전문 직업인의 전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원래 책의 제목인 선전(프로파간다)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22년이었습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급속한 확산에 충격을 받고 글자 그대로 풀이하는 신앙선전실이라는 뜻의 포교성성을 신설했습니다. 이후 선전은 한동안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다가 1차 세계대전기 이후 영미정부의 전시 대국민 선전 활동을 계기로 지금처럼 음험한 색채를 띠게 되었고,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런 의미로 굳어졌습니다. 책의 서두에서 버네이스는 성스러운 산실에서 출생한 선전에서 불길한 기운을 걷어내고 원래대로 순수성과 중립성을 되찾아주는 것이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이라고 밝힙니다. 하지만 선전에 대한 그의 설명을 접할수록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선전이 지니는 소리 없는 음모가로서의 이미지는 더욱 강해질 뿐입니다.

1916년 우드로 윌슨은 반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미국은 반전 국가였고, 국민들은 외국의 전쟁에 싸우러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윌슨은 반전 세력에 힘입어 당선됐고, '승리 없는 평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전쟁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광적인 반(反)독일 미치광이로 만들어 모든 독일인들을 죽이러 가고 싶어 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연방공보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을 선동해 호전적 애국주의에 광분하도록 만들었고 이런 전략은 기가 막히게 잘 먹혀들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불과 몇달 만에 전쟁에 참가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감탄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이 뛰어난 역사적 결과물은 2차세계대전을 통해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그는 물론 선전가로서 대단한 성공과 업적을 남깁니다. 1920년대와 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배우가 관객의 흡연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킬 만큼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버네이스의 머리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러키 스트라이크라는 담배의 홍보를 의뢰받아 근사하게 차려입은 여성들에게 담배를 물려 뉴욕을 행진하게 함으로서 여성의 흡연을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를 팔때 피아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가정 음악실 이라는 개념을 널리 보급해 잠재 소비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간접적으로 구매 욕구를 부추겼고, 베이컨을 팔때는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 제품을 사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는 기존의 판매 방식에서 탈피해 대중의 식습관 형성에 영향력이 큰 의사라는 전문 직업인 집단을 움직여 베이컨의 장점을 부각시켰습니다. 각 방면의 여론을 주도하는 전문가 집단이나 유행을 선도하는 준거 계층을 이른바 후원 위원회 로 내세워 제품을 선전하는 이러한 전략은 그가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그 외에 그가 남긴 많은 결과와 원칙은 선전의 완전하고 체계적인 정리의 기반이 되고, 현재까지도 미디어 전략의 기본 토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는 역설을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누구보다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만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 역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개념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전이 담당하는 역할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름지기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정부, 또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소수의 고결한 엘리트 집단이 나서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대중의 의견을 주조하고 조작할 때 비로소 원활하고 질서정연하게 기능한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 고결한 엘리트 집단에는 전문 직업인, 즉 에드워드 버네이스 자신도 포함되는 개념이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진리를 추구하는 자이자 선전을 선전하는 자’라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현대에 적용하기 힘든 사상으로 탄생한 선전, 프로파간다는 그 특징들로 인해 그 후로 많은 비난과 견제를 받은 동시에, 어느것보다도 시민들이 이해해야 하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덧글

  • draco21 2011/12/21 19:43 # 답글

    어라 괴벨스가 원조라고 생각했건만... 그 선배는 엉뚱한곳에 따로 있었군요.
  • 착선 2011/12/21 19:59 #

    괴벨스는 버네이스의 열렬한 팬이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2차 세계대전때 버네이스의 PR 기술을 마음껏 악용했죠.. 20세기의 정치적 선전이 전체주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심장에서 탄생한것은 참 아이러니라고 할수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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