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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무기상 바실 자하로프의 생애와 시대,《죽음의 상인》 by 착선

제가 무기상이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005년에 나온 미국영화 '로드 오브 워' 가 아닐까 합니다. 전세계 인구의 12명당 1명 꼴로 소형화기로 무장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킬까 고민하던 주인공. 이런 비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영화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합니다. 계속 번성중인 개인 무기밀매상, 죽음의 상인들. 그러한 죽음의 상인중에서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보어전쟁, 러일전쟁, 발칸전쟁, 1차 세계대전에 개입했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군사정책결정권까지 지녔던 사람. 무기 사업은 물론이고 은행, 철도, 호텔, 석유 및 광산채굴권, 공장, 조선소 등을 보유했으며 정점에 있었을 당시 300개의 이사직을 가졌던 사람. 31개 국가에서 298개의 훈장을 받은 남자. 무기상 바실 자하로프입니다.

자하로프의 이력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출생부터 청년기까지 그의 정보는 많은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가 죽었을때 그리스인이라 말한 신문도 있는 반면, 러시아인, 터키인, 알바니아인, 유대인 등 많은 주장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성향은 그가 자신의 출생과 어린시절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는데 그만큼 애를 썼음을 보여줍니다. 교회의 기록이 화재로 소실되고, 전쟁성 문서보관소에 그와 관련된 서류는 서류철만 존재할 뿐, 안의 문서는 사라졌습니다. 온갖 절차를 거쳐서 법정 소송 서류를 열람할수 있는 허가를 얻고 서류를 신청하면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그걸 찾지 못합니다. 이러한 정보의 분실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출생을 비롯한 정보를 제공함에 있어서 헷갈리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의 출생과는 다르게 소년시절 콘스탄티노플의 타타블라 지구에서 살았다는 증거는 풍부합니다. 그는 사춘기시절 창녀촌에서 관광객을 안내하는 안내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환전상, 대금업자도 경험해 봅니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타타블라의 빈민굴 출신이나 창녀촌 호객꾼이라는 불명예를 넘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를 거짓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러시아 왕자라고 소개하며 부유한 건축가의 딸과 결혼하지만 곧 헤어지게 됩니다.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이 시작되자 자하로프가 살았던 그리스는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하로프는 지인의 소개로 공석이 된 노르덴펠트 사의 아테네 대표로 임명됩니다.

자하로프는 콘크탄티노플의 소매치기 소년들이 파이프로 숨을 쉬며 물속에 잠수해 도망치던 기술에 매료됬던 경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현대전에서 잠수함은 가공할 역할을 하리라 확신하고 당시 전쟁으로 군비확장을 시작하던 그리스에 잠수함 판매를 제의합니다. 그의 판매전략은 적당한 아첨, 애국심과 위세에 대한 강조, 그리고 관계자에게 주는 약소한 선물이였습니다. 그는 노르덴펠트의 새 에이전트로서 잠수함을 판매하는데 성공했고, 바로 그리스의 가상적국 터키로 날아갑니다. 그리스의 새 전력에 대한 안보위협을 주장하며 터키에 잠수함 두척을 팝니다. 터키와 그리스가 서로 적대하도록 수작을 부린 자하로프는 이어 러시아에 날아가 터키와 러시아를 적대시킴으로서 러시아에 잠수함 네대를 팝니다. 자하로프는 노르덴펠트의 총과 경쟁상대였던 맥심 총을 견제하는데도 수완을 발휘했지만, 맥심측에서 용서하고 두 회사가 합병함으로서 맥심 노르덴펠트사로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맥심과 노르덴펠트는 사실상 기술자였기에 자하로프가 회사의 진짜 권력의 원천이 됩니다.

자하로프는 그야말로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현대전에서 잠수함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중요성 또한 누구보다 먼저 파악했습니다. 국제정세를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나 그는 그가 관여했던 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무수한 뒷공작과 뇌물공세를 이용합니다. 그의 재능은 맥심&노르덴펠트사와 비커스 사를 거치며 누구보다 뛰어난 무기상으로 꽃피우게 됩니다. 언론을 이용해 각국의 적개심을 이용했고, 각국의 군비증강을 부추깁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양측 모두에 무기를 팔았고, 최대한 전쟁이 오래 가도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도록 공작을 폅니다. 그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군대의 폭격지점까지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당시 브리지역이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는 일화입니다.

독일 국경에 가까운 브리(프랑스 북동부 지방)는 전쟁 전에 프랑스 철광협회가 용광로 단지를 세운 곳으로 연합국과 적국의 상업 및 산업 세력의 상호의존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전쟁기간을 통틀어 그 어떤 연합국에 의해서도 브리나 티옹빌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은 없었으며, 이 두 곳은 광물 보급을 위해서 독일인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27개월동안 독일인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무기공장에서 사용할 수천 톤의 철광석을 추출할 수 있었다. 전쟁을 단축시킬 방법이 있었는데, 그 방법은 2년 이상 무시되었던 것이다. 보수트로라는 프랑스 조종사가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자신이 브리 상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곳에 있는 적국 시설에 폭탄을 투하했다. 자하로프는 전쟁 전야에 프랑스 대통령이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지만, 보수트로가 이 사건으로 받은 유일한 상은 참모본부의 명령에 따라 받은 처벌뿐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전쟁 중에 독일 언론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다. 1917년 10월10일자 라이프치히 노이에스테 나흐리흐텐은 이렇게 보도했다. "전쟁 초기에 프랑스가 로렌 지방으로 12킬로미터만 침투해 들어왔더라면 전쟁은 6개월만에 독일의 패배로 끝났을 것이다." - pp.184~185 

바실로프의 생애는 국제적 무기 카르텔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하로프 노년기는 전쟁이 끝남으로 인해서 개인무기상들의 힘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그를 포함한 당시의 무기상들은 국가정책을 주도하고, 전쟁을 주도했고, 국제정세의 판을 짤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실로프는 특유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전쟁의 판도 뿐만 아니라 그의 사후 벌어질 2차세계대전도 예측했고, 그후의 석유를 둘러싼 국제적 대립구도 또한 미리 예측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무기는 국가주도로 관리되게 됩니다. 무기상의 악몽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자하로프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무기상에서 강대국의 기술관료, 과학자들, 정치인, 언론인의 모습으로 변해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국가간의 적대감을 고조시키고, 끊임없이 무기를 생산, 판매하도록 유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죽은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개인 무기밀매상은 성업중입니다. 영화 '로드 오브 워'에서 정의로운 인터폴 요원에게 설교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풀려나는 무기밀매상은 현실의 모습을 잔혹하리만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풀려나는 이유는 당신이 날 기소하려는 이유와 같아. 나는 현재 최고로 더럽고 잔학한 지도자들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기 때문이지. 그 중에는, 당신의 적들의 적들도 있어. 그리고 당신 대장은 세계 최대의 무기상이지. 합중국 대통령 말이야. 하루에 내 1년 선적량보다 많이 팔아 치워. 가끔은 자기 지문이 찍힌 총은 못 팔 때가 있지. 가끔은 나같은 프리랜서들이, 자기가 대놓고 팔지 못하는 곳에다 팔아 줘야 해. 그러니, 나보고 악이라고? 당신에겐 안됐지만 나는 필요악이야."


덧글

  • draco21 2012/03/06 13:40 # 답글

    ......현실이라는 사실이 무섭기만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 기회만 노린다는것도 그렇고..
  • 착선 2012/03/07 10:16 #

    가끔은 소설,영화보다 현실이 더욱 잔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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