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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재판의 역사가 말해주는 문제점《나는 죄 없이 죽는다》 by 착선

오늘날 학살이나 반인륜 번죄를 저지른 국가원수를 법정에 세우고 처벌하는 행위는, 2차세계대전 이후 현대사회의 발전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재판은 과거부터 존재했으며, 그런 재판은 모두 법적인, 절차적인 면에서 불법적이라는 점을 말합니다. 찰스1세부터 사담 후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재판은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배한 주권자들은 매우 모호하고 부당한 근거로 사형을 당합니다. 뉘른베르크 판결 이후 윈스턴 처칠이 전시참모장이였던 헤이스팅스 이스메이에게 한 말은, 그러한 정치재판에 있어 승자의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재판들의 공통점은 아무도 자신이 관여된 사건의 재판을 맡을 수 없다는 법률 원칙, 불소급법의 원칙, 모든 사람이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근본 원칙, 무죄 추정의 원칙,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과 개인에 대해 사법 박탈권 등의 위법을 행한 것 등이 있습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을 뿐더러, 재판을 하는 쪽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런 정치재판의 특징입니다.

처칠은 이스메이에게 말했다.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네. 만약 졌다면 자네와 내가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훤하네. 이번 판결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p.157 

뉘른베르크 재판의 경우를 예로 들면, 어떻게 하면 독일의 노르웨이 공습은 범죄로 규정하면서, 양국이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 발생한 1940년 7월 메르스엘 케비르 항구에서 프랑스 함대를 공격한 영국의 행위는 범죄로 규정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 연합국인 소련이 핀란드와 발트3국, 베사라비아를 공격한 것과 게 카틴에서 폴란드인을 학살한것을 어떻게 무죄로 만들 것인가? 르완다 학살에서 투치족에 대한 인종 학살의 증거는 넘쳐나지만 후투족에 대한 인종 학살의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모습들은 정치재판은 재판으로 불리울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미국은 악명높은 731부대는 고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부대는 일본 육군 소속으로 생물학전 연구를 수행했는데 전쟁 포로들을 인간 모르모트로 생체 실험한, 최악의 새디스틱 판타지와 연관된 부대였다. 포로들은 산 채로 해부되고 기둥에 묶여 화학무기와 생물학 무기 세례를 받았으며, 의학 연구라는 명목으로 무시무시한 고문을 받다가 죽어갔다. 희생자의 총 숫자는 3000에서 1만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이 부대의 잔악 행위는 재판에서 거론되지 않았는데, 맥아더 장군이 부대장 이시이 시로를 사면하는 대가로 그 부대의 실험결과물을 미국에 넘기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시이는 결코 고발되지 않았고 자유롭게 살다가 1959년에 죽었다. - p.264 

또한 정치재판을 함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데, 국제재판소가 현직 국가원수에게 기소를 내린 사건인 밀로셰비치 재판에서 그 예를 들수 있습니다. 나토의 공습도 불법적이였을 뿐 아니라, 밀로셰비치가 엄청난 인종학살을 가하고 있다는 나토의 선전과는 달리 나토의 포격으로 사망한 수백명의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계 주민을 제외하고 사망자는 모두 500여명이었고, 나토의 선전이 사실이 아니라 과장되었음을 밝힌 저널리스트들도 있습니다. (John Laughland, Daniel Pearl and Robert Block).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또한 재판에서 그의 범죄가 기소될때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논의에서 제외되었는데, 8년간 100만명의 인명을 희생한 이 전쟁이 사담 후세인의 죄가 아닌 이유는 다름아닌 이 기간에 미국이 이라크를 원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화학 및 생물학무기를 이라크에 제공하기도 했고, 이런 불편한 진실은 법정에서 다뤄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죄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유죄와 사형을 선고한 죄는 두자일 사건(1982년에 사담 후세인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은 후 마을 주민에 대한 보복이 자행된 사건)이였는데, 후세인이 두자일 사건을 알고 있었거나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내려진 판결이였습니다. 재판부는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고 결론짓고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러한 정치재판의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결과는 단 한건의 무죄 판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새 정권이 적법성을 얻기 위해 이전 주권자에 대한 유죄선고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판의 속성은 일반 법정에서 일반법에 의해 입증된 명박핸 위법 행위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처벌받거나 신체나 재화에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법치 개념을 따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재판은 사법행위가 아니며, 전쟁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정치재판의 문제점들은, 국제법정의 개념이 대두되는 현재에 어떤 대안이 필요함을 말해 줍니다. 진정으로 사법정의가 보편적이고 공정하며 평등하다면, 이런 정치적 사법행위는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의가 편의가 된다면, 그 정의는 우리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덧글

  • 2012/03/30 17: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착선 2012/03/31 00:00 #

    뭐 저자도 재판받은 사람들(독재자, 왕, 학살자 등)의 죄까지 용서하는건 아니니까요.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던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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