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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도시를 슬럼화하나?《슬럼 지구를 뒤덮다》 by 착선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의 수는 농촌에 사는 사람보다 많아졌습니다. 이런 도시의 거대화는 수많은 메트로폴리스를 낳았는데, 양쯔강 어귀의 지역은 최대 2700만명을, 인도의 봄베이는 3300만명을 수용할 계획입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광역 메트로폴리스는 3700만명에 이르고, 멕시코시티는 5000만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거대 도시화의 급성장은 전지구적 정치위기인 1970년대 후반의 전세계적 채무위기와 1980년대 IMF주도의 제3세계 경제 구조조정의 유산입니다. 이 뒤틀린 도시 붐은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였습니다. 도시의 불황이라는 부정적 피드백이 시골에서 도시로 향하는 이주의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방향을 뒤바꾸리라고 예측한 종래의 경제 모델과는 달리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드는 농민들은 대다수 슬럼으로 가게 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슬럼의 형태는 국가마다 다른데, 미국은 주로 도넛형태(빈민은 도심과 교외 중앙에 밀집)를, 유럽은 접시형태(빈민은 외각의 고층주택)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슬럼은 셋집, 공공주택, 합숙소, 스쿼터(부재중인 집을 무단점유하는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중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묘지에서 사는 카이로의 사자들의 도시(City of the Dead)의 빈민들로, 유골함을 옷과 냄비를 수납하는 편리한 붙박이 선반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서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스쿼터 정착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른바 '쪽방'으로 몰려듭니다. 서울의 쪽방은 5,000개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단위로 잠자리를 임대하고 화장실 1개를 15명이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슬럼의 환경은 대단히 열악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개미굴 같은 빽빽한 슬럼에 몰아넣고 부자들이 정원과 공터를 마음껏 이용하는 것은 수많은 도시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슬럼은 수많은 자연재해와 비위생적인 환경, 공해 등에 시달립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숨을 쉬는 것은 하루에 담배 2갑 반을 피우는 것과 같을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슬럼으로 몰려들었고, 지금도 몰려들고 있는 것은 생존의 길이 도시로 가는것, 슬럼으로 가는것 외엔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럼의 사람들은 슬럼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아시아타임스의 보도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데, 슬럼 주민들을 수도에서 이주시킨 결과, 이주 가구의 평균소득은 약 50퍼센트 감소했습니다. 도시에 있는 일터까지 통근하는 데 최소한 지금 버는 돈의 절반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슬럼 퇴거를 계획하는 대행업자들은 값싼 고층 아파트를 주민들을 위한 대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슬럼 주민들은 슬럼에거 퇴거당해 이러한 아파트에 살게 되면 재생산 수단이 축소되고 생계형 생산의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이러한 아파트 위치로 인해서 일자리 확보는 더 어려워진다. 슬럼 주민들이 슬럼을 떠나지 않고 강제퇴거에 맞서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이들에게 슬럼이란, 환경은 낙후되어가지만 생산은 아직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도시계획자에게 슬럼이란, 그저 없애야 할 도시의 해악에 불과하다. - p.90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도시 주민들은 가난해졌는데 집세는 5배가 증가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당 집세가 가장 비싼 방은 슬럼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가장 열악한 방들은 절대적인 임대 비용이 가장 낮았기 때문에 수요가 가장 많았던 것입니다. 프랭크 스노든의 나폴리 빈민 연구서에 따르면 불행히도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슬럼 숙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임대료 상승은 지불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해졌습니다. 나이로비의 경우 판잣집은 가장 수익 높은 수택 형태인데, 슬럼 지주가 약 3평짜리 판자집을 160달러에 샀다면, 몇 달이면 투자금 전액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지주들과 사설 개발업자들은 스쿼터들을 조종함으로써 토지의 일부를 부동산 시장에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즉 이들은 당국으로부터 스쿼터를 위한 도시 인프라를 얻어냈고, 이를 통해 땅값을 올리는 동시에 수익 높은 주택건설의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스쿼터를 쫓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힘겹게 도시의 면적을 늘려놓고 쫓겨난 스쿼터는 늘어난 도시의 변경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슬럼은 홍수, 지진 등에도 취약하지만 가장 슬럼 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화재인데, 슬럼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지주들이나 개발업자들은 사법처리 비용을 감당하거나 공식적인 철거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방화라는 간편한 방법을 선호합니다. 필리핀 지주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른바 '뜨거운 철거' 방식은 들쥐나 고양이를 등유에 흠뻑 적신 후에 불을 붙여 말썽 많은 슬럼가에 풀어놓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길, "개는 너무 빨리 죽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이런 슬럼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들이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들입니다. 국빈 방문, 스포츠 행사, 미녀 선발 대회 등이 시작되면 당국이 주도하는 도시 대청소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세계가 자기네 나라의 슬럼을 보는 것을 싫어하고, 슬럼 주민들도 정부가 자기들을 '쓰레기' 내지 '그림자' 취급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닐라에서는 미스유니버스 선발대회, 포드 대통령 방문, IMF/세계은행 회의가 열리는 동안 16만명이 바깥으로 버려졌고, 도미니크 공화국의 호아킨 발라게르는 정치적 저항의 중심지를 없애기 위해 18만명이 살던 곳을 철거했습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 라고 했을 정도다. - p.142

슬럼의 환경은 여러 부분에서 최악입니다. 현재 인도에서는 대략 7억명의 주민이 야외에서 용변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로 인해 슬럼 주민들과 중간계층 주민들 사이에는 배변권을 둘러싼 긴장관계가 조성되는데, 실제로 1998년 델리 슬럼 주민 3명이 공공장소에서 똥을 누었다는 이유로 총을 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가난한 여성은 위생설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숙이라는 엄격한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딜레마로 인해 상시적인 공포 속에 살아갑니다. 인도의 슬럼 여성들은 똥을 누기 위해 매일 새벽 2~5시 사이에 용변을 봐야 하는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시간은 그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은 뱀들이 숨어있는 습지대나 들쥐 등의 설치류가 출몰하는 방치된 쓰레기장에서 볼일을 봅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성추행, 나아가 강간에 노출됩니다.

이런 슬럼의 현실에 대해 시카고와 보스턴의 경제학 교수들이 편안한 안락의자에서 생각해낸 위생위기의 해결책은 도시 배변을 전지구적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워싱턴이 지원하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공중화장실을 외채 상환을 위한 현금인출기로 만든 것이였습니다. 실제로 유료화장실은 제3세계 슬럼 전역에서 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가나에서 공중화장실의 유료화는 1981년 군사정부에 의해 도입되었고, 1990년대 민영화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가나에서는 한 가족이 하루 1번 화장실을 이용하는 요금은 기본급의 10퍼센트에 해당합니다. 다른 슬럼인 캄팔라에서도 공중화장실을 한번 쓰는데 드는 돈이 무려 100실링(1400원) 정도입니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다. - 지타 베르마 

세계 곳곳에서 IMF와 세계은행은 가난한 나라에 평가절하, 민영화, 수입규제 철폐, 농산물 보조금 중단, 보건 및 교육의 원가 징수, 공공부문의 무자비한 축소라는 독약을 권했습니다. 윌리엄 태브가 세계경제 지배의 최근 역사를 기술하며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듯이, 외채는 제3세계 국가의 권력을 미국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지배하는 브레턴우즈 기관들로 옮겨놓는 획기적인 권력 이전의 촉진제가 되어왔습니다. 채무징수 기관들은 채무국의 경제발전을 돕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기관들 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 나라들이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전반에 성장을 위해서 사용했던 방법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OECD국가들은 농업 기반 경제로부터 고부가가치 상품 및 용역에 기반한 도시경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호무역 관세와 보조금을 활용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제3세계 국가들에만 보호무역 관세와 보조금을 없애는 IMF와 세계은행의 구조조정프로젝트는 위선적입니다.

이런 IMF와 세계은행의 결정은 제3세계의 농촌의 파멸을 가져왔고, 이는 수많은 농민들의 슬럼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UN의 보고서의 결론이 말하고 있듯이, 도시는 성장과 번영의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미숙련, 무방비, 저임금의 비공식 서비스업 및 무역에 종사하는 잉여 인간의 처리장이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도시입니다. 이러한 비공식 부문의 발생은 시장 개방의 직접적 결과였고, 연구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슬럼은 도시 빈민들을 처리하는 쓰레기장이다. 도시경제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최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놓아야 한다."

노동 과정에 편입되지 못한 산업 예비군이 영원한 잉여 대중으로 낙인찍혀 현재에도 미래에도 경제와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쓸모없는 짐으로 여겨질 때, 사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세계 자본주의의 진짜 위기는 바로 이런 변화다. - Breman, The Labouring Poor 

이런 슬럼의 현실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의 도시인구 중 슬럼인구는 37퍼센트로, 슬럼인구수로 따지면 국가순위 12위에 해당합니다. 아직은 제3세계의 최악의 슬럼과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그 징조는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슬럼과 구분되는 부유층의 폐쇄형 주택이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고가형 아파트로 나타나고 있고, 서울 외곽의 공공임대주택 정책도 다른 도시에서 있었던 슬럼대책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길을 걷는 것처럼 보입니다. 비공식 경제를 나타내는 대리 지표인 도박, 다단계, 복권 등에서도 바다이야기 사건이나, 요새 대학생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간다는 다단계 문제, 로또로 상징되는 복권 등은 한국의 도시에서 슬럼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슬럼에 가게 될 사람은, 현재의 빈곤층만은 아닙니다. 한국의 가난이란 책에서 지적하듯이, 열심히 일하던 중산층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느닷없는 해고를 당하거나, 혹은 가족의 갑작스레 찾아오는 병, 각종 재난과 재해 등에 의해서도 언제든지 빈곤층이 되고 슬럼으로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슬럼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슬럼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함을 말해줍니다.


덧글

  • 2012/04/19 19: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착선 2012/04/19 23:46 #

    옥탑방, 고시원, 반지하방... 주변에 점점 많아지고 있죠..
  • wonhee0118 2012/04/21 21:31 # 답글

    읽고 싶은 책입니다. 거꾸로 도시를 찬양한 책도 있지 않나요? 덩달아 읽으면 더 좋겠죠?
  • 착선 2012/04/22 01:26 #

    다양한 시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도시의 장점에 대한 문구 중에서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것은 '자연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에서 현대에서는 도시가 농촌보다 오히려 종의 다양성이 유지된다는 문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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