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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구조상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법은 왜 부조리한가》 by 착선

만약 죄수가 자발적으로 고문을 선택한다면, 그 보상으로 형기를 줄여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교도소 비용도 절감되고, 죄수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형기를 줄일 수도 있고, 고문이 무섭다면 원래대로 형기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이 윈-윈 전략으로 보이는 아이디어는 실행가능할까요? 법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섹스를 파는 것도, 자기 장기를 파는 것도 안됩니다. 또한 법은 많은 허점이 있으며, 이 허점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하지는 않습니다. 법은 유죄와 무죄 두가지 판결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악행을 모두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이런 법의 부조리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에 대해서 독특하게도 투표의 역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 아마르티아 센의 역설과 같은 사회선택이론이라는 학문을 통해 답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선택이론과 법을 관련 짓는 방법 중 하나는 법 제정의 집단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애로의 정리는 단지 투표 이론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성이 집단적이든 개인적이든 상관없이 모든 의사결정에 확대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의사결정 이론가들이 다기준 의사결정이라 부르는 방법에 속합니다. 여러 가지 기준에 따른 판단을 종합해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이르는 일은 유권자들의 다양한 선호를 종합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는 일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다기준 의사결정 관점에서 법의 원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의 원칙들은 다기준 성격을 지녔기에 사회선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사회선택이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법의 모순된 특성을 다루고 있으며, 이런 특징은 사회선택이론에서 발견한 성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법은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우리가 어떤 일에 동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강제로 합의한것도 아니고, 속임수가 개입된 것도 아님에도 그렇습니다. 자발적인 노예, 성이나 장기 판매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모든 사례에서 승낙이 무시되는 이유는 단지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강렬하게 욕구한다고 해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다른것보다 강력하게 권리주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특징은 공공선택이론 중에서 센의 역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센이 발견한 역설은 사회선택이론을 선거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 적용할 때 나타나는데, 사회구성원으로서 집단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든 과정을 사람들은 일종의 선거처럼 생각한다고 센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할 수 있는 행위 가운데 하나를 음란물 읽기라고 가정해 보면, 우리 사회는 두 개의 집단인 얌전한 사람들과 음란한 사람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관용이 있는 사회라면, 음란한 사람들이 음란물을 읽고 싶어할 때 얌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얌전한 사람들이 음란물을 보기 싫어할 때 음란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것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각 집단에 읽을 권리와 읽지 않을 권리를 부여하면 상생 원칙을 어기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사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면 상생 원칙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역설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는 동시에 상생 원칙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의 일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심사위원단의 판정 결과에 따라 선수들이 여러 항목별로 얻은 점수를 복잡한 방식으로 합산해 최종 순위가 매겨진다. 한 선수만 남겨 놓고 모든 선수가 경기를 마쳤다. 미국의 니콜 보벡 선수가 2위로, 거의 은메달이 확정된 분위기였다. 프랑스의 수리야 보날리 선수는 3위를 기록 중이였다. 마지막으로 경기를 펼칠 선수는 미국의 미셸 콴이었다. 콴의 연기는 예상 외로 훌륭했고, 그 결과 4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콴의 성적이 다른 선수들의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이 대회에서 채택한 점수 계산 방식에 따라 보벡과 보날리의 순위가 갑자기 뒤바뀐 것이다. 보날리가 2위로 올라서고 보벡이 3위로 내려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바꾼 것이 아니다. 보벡과 보날리의 우열이 뒤집힌 것과 콴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두 선수 모두 콴보다 앞서 경기를 치렀고, 두 선수가 콴보다 앞선다는 최종 순위는 전광판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는가? - p.144

법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법에는 애초의 취지보다 과잉 규제하거나 과소 규제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법률과 그 목적 간에 존재하는 간극은 서 영리한 변호사들과 의뢰인들에게 빈번히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제공합니다. 간극이 존재함을 알고 있음에도 법은 그 간극을 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법을 투표로 바꿔봅니다. 만약 법에 허점이 있다면, 곧 투표에도 허점이 있는 것이며 투표의 허점을 보완하면 법의 허점도 보완될 것입니다. 투표에도 역설이 존재하는데, 다수가 원하는 법안을 다수결투표로 표결에 부친다고 해도 그 법안이 꼭 통과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킬러 수정안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다수가 지지하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투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로는 이행적 성격을 띠고, 만장일치하는 의견을 존중하고,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면서, 무관한 요소에 휘둘리지 않는 투표 방식을 찾으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애로는 불가능성의 정리를 통해 이 목적은 달성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애로는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다른 대안이 다른 안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집단 선택으로는 우리가 부여하고 싶은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기본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모든 투표제는 조작에 취약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애로는 완벽한 투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했고, 이는 완벽한 법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 조항의 속성이 다기준이고, 사실상 모든 법 조항이 그렇다는 점에서 이런 허점들은 모든 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특정한 허점을 없애고자 법 조항을 바꾸면 다른 허점들이 생겨날 것이며 이는 다기준 의사결정이 무관한 대안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 외에도 법의 결론이 이분법적인 이유에 대해 더미의 역설 분석과 부분적 변론을 들어 설명하고 있고, 우리는 왜 모든 악행을 법으로 처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과소범죄화 문제와 상충하는 직관 등을 통해 대답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법의 부조리라는 난해한 측면을 법적 논리와 언어보다는 사회선택이론을 비롯해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으로 풀어내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끔 법에 대해 의심과 불신이 생긴다면, 이 책을 통해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글

  • 다시다 2012/10/31 09:19 # 답글

    참신하고 강렬하게 논증하려는 책인데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1부에서 응급 우선순위의 '방해자'가 성매매에서 '대중' 역할로 변환되는 과정 같은 건 비약처럼 들리기도 하고.
  • 착선 2012/10/31 15:55 #

    저도 좀 어렵다 보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더군요. 생각해보면 후반부가 초반부보다 더 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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