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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근본주의는 파시즘이다《지상의 위험한 천국》 by 착선

기독교는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기독교도들이 언제나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동성애자를 박해하고, 낙태자는 사형에 처하고, 이슬람교도를 추방하라고 외칩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저자는 기독교 파시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미국인을 남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기독교적 믿음은 다른 모든 종교적 믿음들처럼 결함이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최선의 미국적 민주주의와 최선의 기독교 둘 모두 자비, 관용, 정의와 평등에 대한 믿음 같은 중요한 가치들을 구현하지만, 이 민주적, 기독교적 가치들은 주권운동으로 알려진 급진적 기독교 운동으로 말미암아 슬며시 해체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급진적 칼뱅주의를 뿌리로 하는 신정론적 종파인 주권운동은 칼뱅이 주입했던 신정을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R.J.러시두니가 1973년에 쓴 『성경적 법의 원리들』은 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데, 러시두니는 책을 통해 가혹하고 용서없고 폭력적인 기독교적 사회를 요구합니다. 간통, 신성모독, 동성애, 점성술, 근친상간, 부모구타, 청소년범죄, 심지어는 혼전부정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러시두니는 나치의 대학살의 숫자가 과장된 것이라고 치부했는데, 기독교를 믿는 인종과 믿지 않는 인종으로 간단히 구분하는 그의 이론은 나치의 우생학 이론과 공명합니다. 마크 A 빌라일즈와 스티븐 K 맥도웰이 1989년에 출판한 『미국의 섭리적 역사』는 많은 기독교 학교에서 사용되는 미국사 표준 교과서이며 자택학습 운동의 요소인데, 이 책에서 자유라는 용어를 주님의 성령에 대한 충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권운동은 기독교적 지향을 도입하기 위해 상이한 도덕규범들과 믿음 체계들을 제거하거나 박멸합니다.

최선의 선전은 말하자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 즉 선전자의 주도권이 대중이 전혀 모르는 채로 삶 전체에 스며드는 것이다. - 요제프 괴벨스 

미국에는 20만 개 이상의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최소 7000만 명 이상의 복음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25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절반에 달하는, 즉 전체 인구의 13퍼센트 정도로 추정되는 기독교우파 집단은 민주적 다원주의에 적대적이고, 압도적으로 공화당원이며, 전체주의적 정책들을 옹호합니다. 나머지 기독교도들은 기독교우파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호응하지는 않지만, 그 기본 원리를 받아들이고 조용히 침묵합니다. 주권운동가들의 영향력은 매우 강한데, 여섯 개의 전국 텔레비전 방송망을 통제하고, 2000개 이상의 라디오 종교 방송국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이슨 푸드, 퍼듀, 월마트 등의 거대기업들은 주권운동가들의 거대한 재정적 후원자이고, 21억 5000만 달러 이상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는데, 이것은 모든 정부 서비스 보조금의 11퍼센트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정치적 영향력도 매우 막강해, 오늘날 모든 공화당의 주 위원회에서 3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18개 주에서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원의원의 45퍼센트와 186명의 하원의원이 기독교 우파 지지단체로부터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습니다. 군사 부문에서도 영향력이 큰데, 블랙워터의 창업자인 에릭 프린스처럼 현대적 용병 군대 창설에 깊이 개입되어 있고, 크리스천 엠버시가 배포하는 비디오에 따르면 미군 장군 40명 이상이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우파의 성장은 절망의 문화에 기반합니다.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이고 경제적인 실패, 3000만명에 달하는 빈곤층, 점점 더 기능을 상실해가는 공적 및 사적 제도들, 현대 산업사회의 질병인 고립은 확대 가족과 공동체의 연결망을 찢어놓았습니다. 절망은 존재와 의미의 중심들이 제거된, 대형 쇼핑센터와 간선도로가 가득한 거대하고 영혼 없는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데서 오는 단절감과 방향 상실의 산물입니다. 또한 국가적 불안에 대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정된 가정과 가족,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고정된 도덕규범들, 불확실성과 의심의 제거라는 약속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 우파로 향하게 합니다. 사랑의 폭탄은 러시아나 중국 공산당의 잘 다듬어진 전술이었는데, 기독교 우파는 그 특성의 많은 것을 공유합니다. 사람들을 기독교로 향하게 만드는 매력, 복음 전도자 집단이 잠재적 회심자에게 갖는 강렬한 관심, 아첨과 거짓 애정이라는 애정 공세는 성공적인 성장을 보장해줍니다. 하지만 따뜻한 포옹은 곧 새로운 규칙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 규칙들은 교회 교리에 대한 절대 복종 체계를 낳고 독립적 사고와 행동을 단념시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 들어간 결과는 옛 공동체와 옛 우정의 파괴이며, 신자들은 곧 교회 공동체 안에 갇히게 됩니다.

이렇게 강대해진 기독교 우파는 자신들의 교리를 사회, 정치의 공간에서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동성애자들을 박해하고, 창조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새로 다듬은 지적 설계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창조론의 위험은 추종자들을 확실성과 마법의 세계로 후퇴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모든 사실들을 예정된 이데올로기의 명령에 기반해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제도들은 보통은 표면상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선전 운동으로서 출발합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적 의견을 우선하는 이 주장은 모든 사실의 우선성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파괴한합니다. 이 허구에 기초한 주장은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가장 원시적 편견들, 계급적 편견,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등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기초한 왜곡들에 호소합니다. 이 위험하고 파괴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믿어도, 즉 거짓들을 믿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오직 믿음뿐일 때, 외부의 세속적 제도들이나 규제 기관들, 국가 재정이나 사회적 책임도 존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안에서 설교하는 메시지는 연방정부 프로그램을 제거,파괴하고 정부 규제와 세금에서 자유로워지고, 최대의 이윤을 방해하려고 하는 노동조합 같은 모든 조직의 기반을 깨뜨리고 싶어 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의 메시지와 딱 들어맞습니다. 때문에 기독교 우파와 자본가의 결탁, 혹은 기독교 우파 스스로 자본주의의 돈벌이에 앞장섭니다. 자유시장의 방해받지 않는 이윤 추구와 세계화의 가장 탐욕스럽고 잔인한 행위들에 신의 이름으로 인가를 내려주는 일입니다. 기독교 우파는 미디어를 통해 가난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부족이며,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봉급의 10퍼센트를 바치면 하나님이 100배로 보상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내세우면서 수백만 달러를 모으는데, 대부분 이런 목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으로 부유한 생활을 합니다.

기독교 우파가 퍼뜨린 신화 중에 하나는 복음주의자들은 가족적 가치와 경건한 신앙심으로 자라난다는 것인데, 사회의 통계들은 그런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합니다. 공화당에 투표하며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있는 레드 스테이츠는 민주당에 투표하며 복음주의자들이 궁지에 몰려있는 블루 스테이츠보다 살인, 불법 및 십대 출산 비율이 더 높습니다. 또한 이혼율이 가장 낮은 주는 메사추세츠로, 동성 결혼 합법화를 빌미로 텔레비전 복음 설교자들이 손가락질하는 주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이 많은 주는 많은 백인 민족주의 단체가 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 즉 기독교 내부의 모든 선하고 인정 많은 것을 무자비하게 파해쳐서 다른 내부의 핵심들과 함께 쓰레기 더미 속으로 내던져버립니다. 남은 것은 오직 껍데기 뿐이며, 형식에는 공허한 잔해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를 죽입니다.

끝없는 관용은 관용의 실종으로 귀결될 것이 틀림없다. 만일 우리가 불관용의 사람들에게까지 끝없는 관용을 베풀고, 불관용의 사람들의 맹공에 맞서 관용적 사회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 관용적인 사람들은 파멸할 것이고 그들과 함께 관용도 파멸할 것이다. 이 공식화에서, 나는 우리가 언제나 불관용적 철학의 주장을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합리적 주장으로 그들에게 맞서고 여론으로 그들을 저지할 수 있는 한, 억압은 확실히 가장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우리는 심지어 강제로라도 그들을 억누를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리적 주장의 수준에서 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모든 합리적 주장을 비난함으로써 논쟁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게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합리적 주장은 기만적이므로 그 주장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되고 주먹이나 권총으로 답하도록 그들은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관용의 이름으로 우리는 비관용의 사람들을 묵인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불관용을 설파하는 모든 운동은 자신을 법의 테두리 바깥에 가져다놓는다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살인이나 요괴, 혹은 노예무역 재개에 대한 선동을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관용과 박해에 대한 선동을 범죄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저자는 하버드대학 신학대를 나온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의심과 믿음은 양립할 수 있으며,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일정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독교의 가치를 파괴하고 있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신정국가로 만드려는 환상을 가진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은 결코 같이 살아갈 수 없는 잠재적 원수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을 배척하고,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 대한 저급한 인식, 번영에 기초한 물신주의 숭배를 외치고 정치권력과 결탁한 종교 지도자들의 행동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파시즘에 대한 지적은, 오늘날 한국의 주류 기독교 문화에도 적용되는 문제들입니다.


덧글

  • 꽃곰돌 2012/09/18 11:20 # 답글

    좋은 책이군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 착선 2012/09/19 10:04 #

    괜찮은 책이더라구요. 추천해 볼만 합니다.
  • 2012/09/18 13: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19 10: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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