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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문제의 핵심은 정책이다《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by 착선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언제나 영양결핍에 시달리면서도 소득이 늘어도 먹는데 투자하지 않거나,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준다고 해도 받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것이 이익이라는 증거가 확실함에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거나, 저축을 할때도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것이 아닌 벽돌을 사서 모은다던지와 같은 불합리한 행동들을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과연 정말로 비상식적인가에 대한 의문에 저자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은 그 어느 경제학자보다도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삶의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이러한 모순에서 저자들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은 제프리 삭스와 이스털리의 논쟁속에 있었습니다. 제프리 삭스는 S자형 곡선과 빈곤의 덫 이론을 주장했고, 이스털리는 L자형 곡선을 주장합니다. 삭스는 S자형 곡선의 빈곤의 덫 영역을 탈출시킬 수 있게 해준다면 빈곤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직접적 원조를 주장하고, 이스털리와 같은 경제학자는 꾸준히 저축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빈곤의 덫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보편적 모델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가난한 사람의 생활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양적, 질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어떤 정책이 그렇지 못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량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값싼 곡물뿐이라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가난과 굶주림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선 또한 기아를 근거로 개념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해줘서 소득이 늘어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은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더 많은 음식을 사지 않습니다. 그 증가분을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맛이 좋고 비싼 식품을 구매합니다. 문제는 열량이 아니라 영양소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한 열량을 모두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균형잡힌 영양을 섭취하기가 힘듭니다. 선진국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소금을 사도 철분과 요오드를 섭취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철분과 요오드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국제기구의 식량 정책인 단순한 곡물 지급량 증대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균형잡힌 식사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준다고 해도 거부하는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보 부족과 박약한 신념, 자꾸만 뒤로 미루는 버릇은 가난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좀 더 배운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으며, 우리는 흔히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편의 시설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니다. 상수도가 설치된 덕분에 아침마다 식수에 염소를 첨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도 없고, 하수는 저절로 흘러나가므로 그것이 어떻게 배출되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음 식사 때 먹을 식품을 어디서 구할지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늘 자제력과 결단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무료 예방 접종을 가난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유는, 의료 서비스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을 위해서는 10km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보건소가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열려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예방접종을 외면하게 되고, 예방보다 더 돈이 많이 드는 치료에 돈을 씁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격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상 제공, 보상 지급, 디폴트 옵션 방식의 예방 의료 체계 구축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며, 쉽게 예방의료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고, 의료 행위의 품질을 규제하는 보건 의료 정책을 주요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교육이 장기적으로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은 잘 알려져 있지만, 빈곤정책에서 학교를 세우고 교사를 채용하는 것은 교육비용을 낮추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선진국은 대부분 부모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데, 부모에게는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자녀를 학교에 보낼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역할이 제한적인 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을 강제하기 어렵습니다. 부모의 소득이 교육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부모가 부유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교육을 더 받고, 부모가 가난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교육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모든 아이가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교과 과정 및 수업 내용은 일반 학생보다 엘리트 학생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투입확대를 통한 교육 개선 노력은 대체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입장을 근거로 부상한 새로운 대안이 조건부 보조금 제도입니다. 소득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공적 주체가 공급에 개입해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모든 아이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게 하는 것이 사회적 효율성에 근접하는 길입니다. 결국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더라도 충격을 완화할 전략을 선택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은 분산 투자를 선호합니다. 경작지를 마을 곳곳에 분산시키며, 흔히 여러 직업에 종사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비료의 사용이 이득임을 알고 있어도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새 종자를 구입하지도 않고, 비료를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러한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것은 농업 분야에서 뚜렷이 나타나는데, 강우 유형이 불규칙한 지역일수록 가난한 농민이 더 보수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자원을 투입합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주는 국가의 보험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에 보조금을 지원하면 이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험 결과 저렴한 보험에 가입한 농민은 그렇지 않은 농민보다 농작물에 비료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고 그 결과 소득이 늘어났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보험 정책은 공적 자금을 이용해 공익을 도모하는 최적의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축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저축을 하려면 자제력이 필요한데, 가난한 사람은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부유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저축 여부를 결정할 때 부유한 사람은 미래를 위해 저축한 여윳돈이 목적대로 쓰일 거라고 예측합니다. 달콤한 차를 전형적인 유혹재라고 하면, 부유한 사람은 달콤한 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에 차를 몇잔 더 마신다고 해서 저축한 돈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물품은 상대적으로 비싼데, 수중에 돈이 없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며 유혹재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자포자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데, 저축하지 않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제력이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피로가 심해진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일수록 저축을 더 힘겨운 일로 여깁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적립기금이나 퇴직연금 등의 제도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은행에 저축을 할 수도 없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일반적이고 간단한 저축 방식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은행이 관리비용을 이유로 소액 예금계좌를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예금계좌를 개설할 때는 까다로운 문서 업무가 따르는데, 그러다보니 소액 예금계좌는 발생하는 수익보다 문서 업무로 인한 비용이 큽니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번듯한 은행계좌가 아니라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안을 이용합니다. 당연히 저축 금액은 은행계좌를 이용할 때보다 적으며, 매주 혹은 매달 저축할때마다 자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케냐에서의 실험은 은행계좌 개설비용이 줄어들면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더 저축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저축을 하는 대신, 가난한 사람들은 영세사업을 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과 그들의 사업은 주변의 수많은 사업과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이 보잘것 없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성장시켜야 하며, 영세사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많은 자금을 빌려야 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율이 높기 때문에 많은 자금을 빌릴 수 없습니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이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사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돈을 빌릴 수 없고, 높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장기간 저축을 해야 하는데, 저축 또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축으로 빈곤의 덫을 넘기려면 60~80년이 걸리게 된다면 가난한 사람은 빈곤의 덫을 넘어갈 의지를 잃게 됩니다. 저축을 해봐야 자신이 바라는 소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포자기하게 되며 미래보다는 현실에 돈을 투자합니다. 이렇게 사업이 쉬운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무작정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업에 특별한 열정이 없어도 사업을 선택하는데, 사업은 취업을 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여러 사례들을 보면, 안정된 직장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은 인적자본 투자의 선순환을 이루어지게 하고 그만큼 미래의 고용 기회도 더 늘어납니다. 고용이 보장될 경우 사람들의 생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고용된 상태에서 돈이 생기면 사람들은 건강과 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합니다. 안정적인 미래가 있다는 믿음은 빈곤층과 중산층을 가르는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서 보여주는 사회구조적인 모순성, 일자리의 중요성 등은 결국 좋은 정치, 더 나아가 좋은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정치 환경이 나빠도 좋은 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으며, 정치 환경이 좋아도 나쁜 정책이 실행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거시경제 정책이나 제도 개혁보다는 작은 변화가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가난의 뿌리를 근절할 스위치 같은 것은 없으며, 기대야 할 것은 시간과 조용한 혁명의 신호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위해선 이른바 따기 쉬운 열매들, 쉽고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변화를 발휘하는 방법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가난한 사람들의 의사결정 방식 뒤에 숨어 있는 합리성에 주목하는 것부터일 것입니다.

덧글

  • dada 2012/10/20 12:34 # 답글

    오 잘읽었습니다. 책도 읽고 싶어집니다
  • 착선 2012/10/20 14:29 #

    괜찮은 책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있더군요
  • wonhee0118 2012/10/30 14:16 # 답글

    동의해요.
    항상 책을 읽고싶게 만드시는 착선님이시군요:)
  • 착선 2012/10/30 15:32 #

    흥미로운 책이였습니다. 책에서 나온 제프리 삭스와 이스털리가 쓴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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