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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는 희망이 아니다,《희망의 배신》 by 착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은 대학에 못 갔기 때문에, 혹은 아이를 일찍 낳아버려서, 혹은 태어났을 때부터 집이 빈곤해서 빈곤의 덫을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빈곤하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할 수 없는 빈곤층이 있습니다. 바로 화이트칼라 빈곤입니다. 이들은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성격적으로도 흠 잡을 데 없고, 때론 눈부신 성과를 올리며 흔히 말하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때부터 이렇게만 하면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들으며 자랐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들은 부모들이 권장하는 이상적인 레일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빈곤층입니다.

화이트칼라가 빈곤층이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직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이트칼라 빈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자신의 저서《노동의 배신》에서 저임금 노동자가 됨으로써 워킹푸어를 체험한 것처럼 직접 구직자가 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가갑니다. 자신의 결혼 전 이름을 되살리고, 구직자를 위한 모든 형태의 도움을 받고, 직장의 위치나 면접 장소에도 개의치 않고 어떤 일이던 받아들이겠다는 지침을 정합니다. 유일한 요구사항은 구직자로서 의료보험이 제공되며 연봉 5만 달러라는 두가지 조건 뿐이였습니다. 바버라는 세포생물학 박사인데다, NGO경험도 있으며,〈뉴욕 타임스〉나〈타임〉,〈네이션〉등 미국 주요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라는, 그야말로 누구나 인정할만한 성공적 사회인이였기 때문에 그의 이력을 약간 낮추더라도 회사를 얻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버라는 흔히 취업을 함에 있어서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방법들을 모두 사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취업 네트워킹, 취업 전담 코치, 취업 박람회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구직의 세계에서도 허황된 긍정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코치들은 한결같이 취업을 위해선 과도할 정도로 낙관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이른바 자기계발서적인 조언만을 반복합니다. 또한 해고를 당한 이유는 회사의 잘못된 운영 탓이 아니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너' 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는 건전한 경제구조나, 인간 친화적인 기업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보단 구직자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며, 취업을 하고 싶다면 경력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여서라도 상품으로서의 구직자 자신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기업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품으로 변신하는 방법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구직자들은 근로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취업을 위해선 회사가 미처 몰랐던, 회사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옷차림에도 더 신경써야 하고, 목소리도 관리해야 하며, 몸매도 관리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경우는 너무 아름다운 경우 취업하는데 있어서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존 몰로이는 어깨까지 닿은 머리카락, 지나치게 드러낸 다리, 너무 큰 가슴과 같은 성적 매력은 여성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며 사회생활 경력을 끝장내는 어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유머감각도 탁월하며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고 상사의 말에 복종하며 전문적인 느낌을 주면서 어디에도 튀지 않는 그런 상품만이 취업의 세계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누르고 승리한 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동봉한 이력서는 쓰레기 메일이다. 자기소개서가 없는 이력서는 새장 바닥 깔개로 사용된다. 무작정 보내거나 표준적으로 작성한 이력서는 받은 편지함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일부 기업은 거절 응답을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잠자코 무시한다. 이력서의 99.2퍼센트는 보지도 않고 버려진다. - 제프리 폭스 

구직의 세계에서 뛰어난 상품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취업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바버라는 마침내 구직자의 세계로 뛰어든 뒤 6개월만에 애플랙이라는 보험회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바버라가 생각했던 회사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회사에서 사용해야 하는 노트북도 구직자가 부담해야 하며, 각종 자격증과 영업 기법 훈련도 자비로 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의료보험 상품을 파는 회사에서 의료보험도 지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바버라는 결국 1년에 가까운 구직 활동을 했지만 회사를 찾지 못했습니다. 바버라가 구직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연락해봤지만 어느 누구도 취업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가며 코칭을 받고, 나이는 줄이고 경력은 늘리는 등의 위조를 하고, 연줄을 만들려고 온갖 행사에 참석했고, 화장법에 성격까지 바꿨지만,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결국 많은 구직자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것은, 부동산 중개업, 프랜차이즈 사업, 수수료에 의존하는 영업직과 같은 것들입니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안정적이면서도 성장을 장려하는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 줄 수는 없습니다. 사업은 실패하고, 소비자의 취향은 변하고, 기술은 저 혼자 앞서 나갑니다. 다시 말해 치즈는 언제나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적어도 일자리만은 제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세금 감면, 공공 보조금, 규제 완화 등 기업이 받는 혜택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에게 혜택을 제공해 주며, 관료들은 기업을 애지중지하는 게 국민을 위해서라고 늘 말합니다. 하지만 기업이 흑자를 내도, 일자리는 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운영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가 비용 절감의 일차 대상이 됩니다. 또 CEO가 선호하는 인수 합병의 결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필연적으로 정리 해고가 따릅니다. 주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운사이징도 일상적으로 행해집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앰으로써 고위 경영자들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대량의 정리 해고를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CEO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겼습니다. 최근 몇 년간 CEO들이 막대한 보수를 챙기는 데 일등 공신이 된 것은 아웃소싱인데,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한 50개 미국 기업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에 비해 5배나 높았습니다. 기업 고위직 운영진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는, 일자리를 줄이고 남은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컴퓨터 과학자가 상당한 실적을 올린 뒤 월급을 올려달라고 말하자 상사는 말했다. "왜 그런 걸 바라지? 월급을 많이 받는다는 건 등에 과녁을 새기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 p.301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당연히 가장 유능한 사람을 채용하고 승진시켜야 합니다. 가장 똑똑하고, 가장 경험이 많고, 가장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을 붙잡아야 합니다. 합리적 기업은 직원들의 창의성, 혁신, 비판적 사고를 장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화이트칼라에게 이런 능력은 경력을 끝장낼 자해 무기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 월급 인상이라는 보상을 받은 사람은 비용 절감 조치로 제거될 위험에 노출됩니다. 바버라가 구직 도중 만난 한 구직자의 일화는 그러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6개월 걸릴 일을 2개월만에 끝내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고 임금인상을 받았지만,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높은 임금을 이유로 해고당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할 행동은 자명합니다. 능력이 있더라도 일부러 일을 질질 끌거나, 유능한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높은 이익을 남겨 주되, 승진이나 임금인상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저자는 현재 기업 문화를 바라보며 다윈 식의 이런 생존경쟁에 한계는 있다고 말합니다. 제거된 사람들이 맡았던 일을 생존자들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며, 이는 기업에 심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수준의 광기 이면에 거시적 수준의 비합리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희망의 배신》이 출간되고 나서 많은 호응이 이루어졌고 실재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을 위한 조합 조직이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여실히 적용되고 있습니다. 화이트칼라는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며, 화이트칼라라는 희망에 기댔다가는 배신당할 것이라는 교훈을 말입니다.


덧글

  • 2012/12/06 16: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6 23: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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