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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는 왜 필요한가?《캐비어 좌파의 역사》 by 착선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선 부자들, 그들을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라고 부릅니다. '평화의 전사'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단어를 결합한 결과물인 이 단어는, 부의 상징인 캐비어와 가난한 자들의 진영인 좌파가 접목된 단어입니다. 이들은 좌파 내부에선 부르주아라고 손가락질당하는가 하면 우파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가진 돈으로 미루어 이들의 정치참여가 위선이며 편의상의 신조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임을 수행해 왔습니다. 괄목할 만한 진보주의적 전진이 있을 때나 계급관계에서 변화가 있을 때, 혹은 중대한 개혁의 시기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어느 곳에나 존재해 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들을 '토스카너 프락치온'이라 부르며,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 미국에서는 '피프스 애비뉴 리버럴'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대동법의 제정이 이루어지는 등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캐비어 좌파들이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이들을 '강남 좌파' 라고 부릅니다. 모순투성이인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 흐름에서 오히려 본질적인 기능을 맡아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모호한 좌파는 좌파를 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의 개척자들이며,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대다수 좌파 정당의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출신입니다.

마음으로는 아파하지만 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특징은 이 특이한 좌파의 모호함을 정의해 준다. 솔직히 이는 일말의 정직함을 지닌 높은 양반들이 비천한 아래 사람들의 운명에 다소나마 관심을 둘 때면 으레 나타나는 보편적인 작태이다. 위선이나 자기기만이 아니냐고? 그럴 확률도 상당히 높다. 하지만 모두들 동의하겠지만, 위선과 자기기만이라는 악이 간혹 이웃을 염려하는 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만한 자들의 냉소주의보다는 백 배 낫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억울하면 그들도 부자가 되면 되잖아"라는 말만 해댄다면, 이 사회는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 pp.29~30 

기업의 경영자들은 캐비어 좌파를 증오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이들이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데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궁정 작가이면서 엄청난 부자였던 볼테르는 모두에게 평등한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공화주의자이며 하층민들과 가깝게 지낸 빅토르 위고는 성공한 작가였고, 호화스러운 삶을 영위했습니다. 정치경제학에 혁명을 몰고 왔으며 노동자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던 캐비어 좌파인 케인스는,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고, 가장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캐비어 좌파에게 실존은 본질에 우선합니다. 엘리트 진보주의자들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사상이나 계급에 따른 편견, 물려받은 신념 등이 아닙니다. 캐비어 좌파들은 사회에 대한 경험, 특히 대규모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바꾸며 정치적인 선택을 합니다.

프랑스에서 캐비어 좌파가 대두하게 된 계기는 볼테르의 투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이슈를 몰고왔던 사건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이였습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글을 기고한 에밀 졸라는 격조 있는 아파트에 살았던 캐비어 좌파였습니다. 에밀 졸라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고발함으로써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갔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와 부의 정상에 오른 뒤, 반역이라는 누명을 쓴 무명의 유대인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웅변가, 마르크스주의를 프랑스에 보급한 자, 노동자계급의 상징인 쥘 게드는 드레퓌스 사건은 부르주아 내부의 패권 다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론은 극명하게 이분되었고 가족들 간에도 찬반이 갈렸고 친구들끼리도 서로 상대방을 비방했으며 정당들도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우파, 한림원, 사제단, 군대는 반 드레퓌스파였고, 좌파, 인권연맹, 지식인, 사회주의자, 공화주의자들은 친 드레퓌스파였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사건은 무죄로 밝혀졌고, 캐비어 좌파는 역사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캐비어 좌파는 개혁을 신봉하는 자들입니다. 캐비어 좌파는 계급 간의 타협을 주장할 뿐, 구체제의 전격적인 전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이들은 똑똑한 개혁주의자가 고집스러운 보수주의자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믿는 혁명주의자들로부터 줄곧 야유와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캐비어 좌파는 우파와 좌파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다리와 같습니다. 만약 캐비어 좌파가 없었다면 우파와 좌파 사이에는 지금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불행한 단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캐비어 좌파는 그 과격한 역사적 변화에 완충재 역할을 수행하면서, 실질적으로 극좌파나 극우파보다 훨씬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캐비어 좌파들의 그 같은 추이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느냐는 물음엔 자신있게 답할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경제의 금융화, 세계화 등은 지배계급을 이전 시대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엘리트들은 우파나 좌파를 가릴 것 없이 모두를 똑같은 도약 속으로 끌어들였고, 그 결과 지배 계층에 속하는 진보주의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정치적 뿌리를 부정하며 우파의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캐비어 좌파는 그들의 강점인 도덕적이고 이념적인 헤게모니를 강경한 자유주의 옹호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캐비어'가 '좌파'에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부르주아 좌파가 사라지게 되었고, 부르주아 좌파는 이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들먹이며 민중의 정당한 이익마저 망각해 버렸습니다. 이들은 유권자들의 동요를 읽지 못하고 부르주아의 사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독창성을 상실했으며, 노동자 계급과 유산 계급 사이의 중개인으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냉소주의와 이기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 엘리트 집단과 마찬가지로 배척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는 지역주의의 수혜지역인 경상도 지방에서 남성으로 자라나서, 입시경쟁의 승자가 되어 대학에 들어간 후 미국물까지 먹고 돌아왔으며, 집값 비싼 강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학벌의 정점이라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 침팬지 세상의 승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정식,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에 따르면, 나는 지금 숭미보수우파로 활약하고 있어야 할게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으로 반대성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는 좌도 우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 시기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생각할 때 우가 아니라 좌로의 한걸음이 필요하며, 보노보적 본성이 더욱 많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여 과잉우편향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 앞에서,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립 또는 중도의 이름하에 숨어 있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드러내며 비판하고 비판받는 것이 진리를 찾는 길이라 생각한다. 설사 누가 나를 '좌파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폄하할지라도, 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을 좇아 의식적으로 왼편에 서서 나의 존재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고자 한다. - 《보노보 찬가》, 조국 

캐비어 좌파의 다수가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에, 캐비어 좌파는 더 이상 과거만큼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이는 최악의 경우 사회의 상층과 하층의 대립이라는 위협적인 양상을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자유와 현실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민중에게 신뢰감을 주는 좌파를 되찾을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인간들을 지지하며, 도덕적 가치에 토대를 두고, 본질적으로 개혁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원칙과 준거, 가치에 토대를 두고 그것을 존중하는 확고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캐비어 좌파는 그들이 기꺼이 수행해왔던 역사적인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덧글

  • 2012/12/14 14: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4 16: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마르크스 2012/12/14 14:59 # 삭제 답글

    마르크스를 후원했던 헤겔 같은 사람도 갑부인데 강남좌파가 대수냐.
  • 착선 2012/12/14 16:15 #

    엥겔스 말씀하시는거죠?
  • 2012/12/14 15: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4 16: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E9 2012/12/14 20:29 # 답글

    하지만 대개 '강남좌파'라는 말이 단순히 부유한 좌파를 지칭하는 건 아닌 듯해요. "Do as I say, not as I do"이라는 비아냥이 있듯이, 매체를 통해서는 좌파의 이론을 설파하면서 빈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그것을 도리어 자신의 자본으로 삼는다면 이는 진정성 차원에서 설득력을 잃게 되는 요소이죠. 이론과 실천이 별개가 되어버리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우니까요. 예를 들면 집안에 여성가정부를 둔 여성해방론자의 이론이라던가 자녀를 해외 명문대로 유학보낸 좌파 교육론자의 교육 철학이라던가, 이런 얘기들을 사람들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윗글이 직접 해명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윗글의 주요한 논점인 "우파와 좌파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다리"로서의 '강남좌파'의 필요성에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요.
  • 착선 2012/12/14 17:13 #

    말씀하신대로 그런 부분에서 캐비어 좌파, 혹은 강남 좌파가 다른 사람들의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말한 대로 이들은 '좌파 내부에선 부르주아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정치참여가 위선이며 편의상의 신조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습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분명히 그런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책에선 그라쿠스 형제, 볼테르, 빅토르 위고, 케인스, 에밀졸라, 루스벨트, 케네디 등이 캐비어좌파로 소개되는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러한 캐비어좌파가 지닌 이중성에도 불구하고, 냉소주의자들이나 극좌파, 극우파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 더 진보적인 입장에서 큰 일을 해내왔고,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라는 진보적 위업을 달성했지만, 아마 세종대왕의 삶에선 한문을 더 많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종대왕의 행동은 위선적이지만 그 행동을 현재는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것들도 그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더하기 2012/12/14 17:37 # 삭제 답글

    오히려 부유한 삶 속에서 세상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현재 자신과 같은 소수가 가진 부유함. 다수가 가진 가난과 불행. 이런 부조리한 세상의 움직임은 진정 학문을 배웠다는 사람이라면 한번 돌아보고 그 안에서 조율자의 역활을 수행하는게 최선이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억압 받는 사람들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외침은 투쟁이 될 수 밖에 없지만 가진자의 외침은 역시나 럭셔리 하겠죠.
  • 마당쇠 2012/12/14 21:05 # 삭제 답글

    캐비어좌파라...

    대세(흐름)라는게 있습니다. 캐비어 좌파가 기우는 방향이라고 보면 맞을겁니다.

    그 대세에 브레이크를 거는건 우파가 아닙니다.

    이론과 행동이 다른,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한 캐비어좌파가 앞에 나설때 생기는 필연입니다.

  • 2012/12/15 01:22 # 답글

    전 저런 표현을 들을 때마다 윌리엄 모리스가 생각나더군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712144321
  • 강남목수 2012/12/15 05:07 # 삭제 답글

    강남좌파가 아닌 강남목수입니다 ㅋㅋ
    대학교때 데모 한번 안해본놈이 이제와 진보적 가치를 논하는것에 대해 친구한테 많은 욕을 먹고 있습니다...

    현재의 경제적 위치는 차치하더라도 부르주아적 성장과정을 거쳤던 사람들이 오히려 정상적 사고과정의 합리성
    측면에서 보았을때 소위 우리나라 보수파들의 행태를 본다면 결코 그들의 편을 들 수는 없을 겁니다..
  • 은행낭 2012/12/15 08:27 # 삭제 답글


    서평 잘 읽었습니다.
    대선정국에 새삼.. 캐비어좌파의 역할이 중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제가 관심갖고 글올리는 사이트
    www.donghaeng.org에 이 글의 일부를
    모셔갑니다.
  • ㅎㅎ 2012/12/15 15:11 # 삭제 답글

    조국같은 인간이 위선인 이유는 좌파짓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기 보다는 개인적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지.

    학문적으로는 업적이 없으면서 명성을 좌파짓을 통해 얻지. 자기희생은 커녕 오히려 좌파짓으로 이득을 취한다는게 문제
  • SCV 2012/12/15 16:20 # 삭제

    남로당 빨갱이 박정희 수령 딸레미는 무슨 업적이 있으신가 모르겠군요.

    좌익 파시스트의 딸이 보수 정권 대통령이라니 박그네 당선 되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 보수들에게 병쉰 취급 당할 것이다.

    우빨 짓을 통해서 개인적 영향력 확대 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여자를 대통령으로 밀겠다니 혹시 '병 걸리셨어요?'
  • ㅇㅇ 2014/08/16 23:13 # 삭제 답글

    비싼건 1g 1만원 하는 철갑상어알을 쳐드시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격한다?
    자본주의 꿀빨고 있으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cv 저분 최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존재자체를 모르시는분....
  • 더러운 세상 2016/08/13 20:44 # 삭제 답글

    나는 분당종북이로세~!!! ㅡㅡ;;;;;; 내가사는곳은 분당신도시지만 사고방식이 완전 친북이라는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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