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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어열풍은 '사회적 사기'다《영어 계급사회》 by 착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문을 고르자면 어떤게 가장 중요할까요? 한국어일까요? 수학일까요? 아마 십중팔구는 '영어'를 고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단연 독보적으로 중요합니다. 진학, 취직, 승진 등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비마다 영어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미군정 시기와 건국 초기를 보면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도 출세를 하는데 있어서 영어는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영어열풍이 일종의 사회적 사기이며,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문제이자 계급 간의 갈등을 낳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 영어학원은 영어회화 초급반의 목표에서 '실생활에서 필요한 회화를 자연스레 습득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 및 질문에 답변하는 순발력을 향상시킨다'고 광고합니다. 이처럼 영어가 된다는 희망이 가득찬 메시지는 학원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옵니다. 수많은 교재와 미디어에서 영어를 당신도 잘 할수 있다고 외칩니다. 이런 메시지의 기반에는 돈만 좀 들이면 별 문제 없이 영어 실력을 챙길수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풀이를 반복해서 토플이나 토익을 잘 본다고 영어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외국 말이 다 그렇듯이 영어 또한 언어만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미계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넓게는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영어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되지도 않는 것을 하면서 안되면 좌절합니다. 처음부터 사회의 요구가 무리였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영어 열풍은 대학가에서도 불고 있습니다. 갈수록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과목이 늘어나고 있고,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캠퍼스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대학이 국제화를 선도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있는걸로 보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고역인 변화입니다. 영어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의 설문조사에서 전공 내용의 전달이 약화된다는데 크게 동의한 반면, 실력이 향상된다는 데에 강한 부정을 보였습니다. 교수들 또한 영어강의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함으로써 전공수업을 단순히 교과서 겉핥기 수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들이 영어에 안달인 이유는 신문사들의 대학 평가에 있습니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배점을 보면 영어 강좌 비율은 20점으로, 전체 비율의 5.7%에 달하는데, 이와 같은 점수는 교수 당 학술지 논문 게재 수, 외국인 교수비율밖에 없습니다. 또한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15점으로 전체 평가의 약 4.2%에 달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대부분은 한국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들은 영어강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젊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이 주요 책임인 대학에서, 드는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결과를 내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통해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영어산업은 막대한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에 섯불리 건드리기 힘든 곳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학원산업은 전체 서비스 업종중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사하는 사람들도 서비스업종 중 1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9년 기준으로 사업체 수는 141,525개이며, 51만명의 일자리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영어교재는 서점에서 전체 판매액의 10.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영어 사교육비는 2009년 기준으로 정부 공식 통계 발표는 7조, 증권가에서는 15조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산업 규모가 크다보니 영어를 통해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막대합니다. 한국의 토플 응시자는 세계 최대이고, 토익은 전 세계 응시자의 절반이 한국인입니다. 2008년 한해에 토플비용으로 250억원에 달하는 돈을, 토익비용으로 850억원을 미국의 기관에 지불했습니다. 요새 대기업 취직시 각광받고 있는 영어 말하기 시험 중 하나인 오픽은 2006년에 국내에서 처음 실시되었는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한해에 100억원에 이릅니다.

이처럼 많은 돈과 시간을 영어교육에 투자하고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의 성인들의 영어실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중위권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에 목을 매는 이유는 미국의 지식, 가치, 언어는 한국사회에서 유용한 재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011년 7월 기준 정부 장관급 인사의 45%가 최종학력이 미국 소재 대학들 나왔으며, 299명 국회의원 중 21%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2011년 삼성의 임원 승진자의 62%가 미국 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았고, 서울대 정치학 전공 교수를 보면 85.7%가 미국 대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벌 연줄은 미국대학에서도 이어지며 각종 모임을 통해 그들만의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능숙한 영어는 상위 1%에겐 계급을 상징하는 수단입니다.

흔히 영어사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 중 하나는, 세계화 시대에 뒤쳐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 영어는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이지만, 영어 외에도 세계화에 대처할만한 언어는 더 있습니다. 유엔의 공식언어도 아랍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진정으로 세계화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목표라면, 영어를 열심히 하는 만큼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 스와힐리어, 포르투갈어, 네델란드어, 아랍어, 이란어 등도 열심히 해야 하고 사회는 이를 응원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영어라는 한 언어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미국은 세계와 동의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생각한 세계화는 미국화 내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 프로그램들은 언어의 소실을 돌이키지 못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알래스카 어는 더 이상 아이들 사이에서 말해지지 않았다. 상류 쿠스코큄 아타바스카 어가, 타나이나 아타바스카 어가, 쿠친 아타바스카 어가, 이누피아크 에스키모 어가, 알루티크어가 더 이상 말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은 오직 영어로만 말하며 학교로 오기 시작했다. - 《언어의 종말》, p.298 

우리는 많은 경우에 미국 드라마를 보거나 팝송을 따라 부르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드라마를 보거나 팝송을 부릅니다. 우리의 영어는 대부분 진학과 취직, 승진을 위해, 한국사람들에게 보여줄 점수를 위한 영어입니다. 즉 영어는 내수용이며 일종의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영어 경쟁은 계급적입니다. 영어유치원은 물론이고 국제중, 외국어고의 경우 가난한 학생은 갈 수 없습니다. 대학교 등록금보다 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영어실력으로 사회적 계급이 나뉘는 상황에서, 그 출발은 지극히 불공평합니다. 우리는 현재 언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닌, 계급경쟁의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합니다. 때문에 이런 구도는 영어 열풍 덕에 만약 전 국민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영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또 경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비효율적인데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질문을 제시합니다. 영어 광풍의 끝자락에서 모든 한국인들이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과연 한국어를 계속 사용할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역사의 한 시점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공통의 링구아 프랑카를 채택함으로써 다른 공동체에 보다 가까워지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종종 그들은 지각되고 합리적이며 경제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그 목적이 바뀔 때 또는 그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되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구 언어가 부여했던 정체성 또는 선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오스틀러  

수없이 많은 문제와 이해관계가 엉켜있기 때문에 이를 쉽게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저자는 그나마 쉬운 방법으로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내놓을 수 있는 방안 두가지를 말합니다. 공무원시험에서, 대학입시에서 영어의 비중을 줄이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관점에서 봐도 대부분의 공무원들이나 대학생들은 현재처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가며 영어공부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더 이상 영어를 장려하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 주면 KTX를 탄 듯이 달리고 있는 영어열풍에 조금이지만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나간다면, 우리는 그만큼 남는 열정과 시간을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덧글

  • 2012/12/17 15: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지나가다 2012/12/17 20:07 # 삭제 답글

    글쎄요.. 물론 우리사회의 영어열풍이 과도한점이 없지않다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만 회사에서 외국과 커뮤니케이션할때는 영어가 정말 필수인거 같아요. 특별한 경우가 아닐때에는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것이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의 "매너"로 인식이 되는게 현실이니까요. 심지어 엔지니어들조차도 해외고객의 요청을 처리할 때 영어로 의사소통해야하는데, 이 상황에서 글쓴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다른 언어는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할 순 없거든요.
    물론 전~혀 영어사용을 하지 않는 직업군에서 영어점수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현실은 불편하지만, 영어란 능력은 직장생활에서 필요불가결한 능력임에는 분명합니다.
  • 순수낭만 2012/12/18 09:12 # 삭제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출세의 도구로 전락해서 사회적계급을 가르는 용도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대학입시부터 입사와 이후 인사고과에 영어는 필수적이죠.
    영어를 잘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시험에서 줄을 세우기 위해 결국 점수에 차등을 둬야하고 그러다보니 말하기 듣기가 아닌 문법적인 요소만 주를 이루죠.
    그런 의미에서 opic 등을 통한 교육방식의 개선이 큰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데 싸이가 공연을 한적이 있습니다.
    싸이의 영어를 현장에서 직접 들었는데 한국식 발음과 문법 그리고 아주 쉬운 문장들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전혀 의사소통에 문제점이 없고 미국 방송들과도 자연스러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도 스웨덴이나 서유럽처럼 점수가 목적이 아닌 의사소통이 목적인 영어교육을 한다면 말씀하신대로 실생활과 비즈니스에서 큰 도움이 되면서도 과도한 영어열풍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ㅇㅇㅇ 2012/12/17 22:44 # 삭제 답글

    사실 영어가 모두에게 필요하진않죠. 윗분처럼 필요한사람에게 더욱 좋은환경을보장하고 나머지는 다른 역량을 쌓을수있게해주는게 맞다고봐요.
  • 맞습니다. 2012/12/18 01:04 # 삭제 답글

    모든 시험에서 영어 비중을 줄여야 합니다.
  • 나그네 2013/02/21 01:07 # 삭제 답글

    사려깊은 의견 잘 보고 갑니다. 영어 교육에 관해서, 영어 열풍에 관해서, 그리고 그것이 만들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영어에 스트레스 받고 그와 동시에 또 잘하고자 노력하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풍경이 되버린 것처럼 인식하는 저를 발견하고 약간 서글퍼 지는군요 ^^;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앞으로 영어가 통용되는 범위가 점차 넓어질것은 자명한 사실이기에 국제적인 경쟁력에 있어서도 영어 능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어느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하는 것은 먼저 "영어 교육" 자체가 주입식, 커뮤니 케이션 외적 요소에 비중을 두는 기존의 답답한 방식 보다는 영어과목은 영어로 가르치는, 핀란드 처럼 영어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영어교사를 국가적으로 장려한다든지 독일 혹은 싱가포르 처럼 보다 효율적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바꾼다면 사교육 영어 열풍에서 초래될 수 있는 "영어의 계급화"가 어느정도는 해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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