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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범죄자 헨리 키신저를 심판하라《키신저 재판》 by 착선

헨리 키신저. 그는 미국의 국가안보 보자관을 지냈고 국가안보협의회 의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한 닉슨 행정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였습니다. 미국 외교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소련과 미국의 긴장완화정책인 데탕트를 추진했고,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성사시켰습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개선시켰고, 베트남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 유지에 애쓴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력은 그가 세계적인 평화의 전도사로 비춰지게 합니다. 하지만 저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기밀 해제된 자료에 입각하여 미국의 외교 전략에서 세계 평화는 수사일 뿐,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이 기획되고 실행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미국 외교 전략의 정점에 있는 헨리 키신저는 전쟁 범죄자이며, 대량 학살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키신저의 행위가 한 나라의 외교정책이라는 거대한 행위 중 일부이기 때문에 그 행위가 범죄행위일지라도 책임을 전적으로 키신저에게 부과할 수는 없지만, 일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것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명실상부하게 키신저가 저지른 범죄를 히친스는 크게 6가지로 분류합니다. 키신저는 인도차이나 민중에 대한 무차별 대량 학살을 계획하고 입안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대량 학살과 암살을 공모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 칠레에서는 합법적 대통령에 대한 살해 계획과 은폐를 했고,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 키프로스에서도 국가 수반을 살해하는 계획에 관여했습니다. 동티모르에서도 학살을 선동하고 유도했으며, 워싱턴에 거주하던 언론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계획에 관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을 뿐더러, 미국 국내법 혹은 국제법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마닐라 재판에서 사용된 기준이 베트남전을 주도한 미국 정치가들과 관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그들도 독일과 일본의 전쟁범죄자들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뉘른베르크 검사장 텔포드 테일러 

키신저는 베트남 분쟁을 해결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에서 키신저 때문에 평화협정이 4년 늦춰졌으며, 이로 인해 죽지 않아도 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선이 눈앞에 있었는데, 키신저는 남베트남 입장에서 민주당이 진행하던 평화협정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 수 있다고 군부를 설득해 결과적으로 평화협정을 미루게 만들었습니다. 4년 뒤 당시 진행하던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평화회담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무의미한 피를 4년이나 흐르게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화협정의 연장은 키신저를 기회주의적인 학자에서 국제적인 유력자로 출세하게 만든 사건이였습니다. 덕분에 4년간 공식적으로 20,492명의 미군 병사가 더 죽었고 인도차이나 사람들의 사망수는 셀수조차 없었습니다.

또한 키신저는 베트남에서의 장기전을 지속할 것과,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전쟁지역을 확대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전면적인 맹폭격을 가했는데, 당시 프랑스의 드골은 닉슨 행정부가 무슨 권리로 인도차이나에 폭격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그에 대해 키신저는 갑작스러운 철수는 체면과 신뢰도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합니다. 4년동안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450만톤의 고성능 폭탄을 투하했는데, 이는 2차 세계대전 기간의 전체 폭탄 투하량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확대 폭격 결과 라오스에서는 35만명의 민간인이, 캄보디아에서는 60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추정치는 최고 추정치가 아닙니다. 한 개인의 체면이라는 가치가 백만이 넘는 희생자와 그의 서너배가 넘는 피해자를 낳은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세계에 전파한다는 미국의 야심찬 주장과 달리 미국은 칠레와 키프로스의 민주주의를 파괴시켰습니다. 당시 칠레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고도로 발전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유권자 3분의 1은 보수당에 투표하고, 3분의 1은 사회당과 공산당에 투표하며 나머지 3분의 1은 기독교민주당과 중도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선거 지형이 만들어졌고, 칠레의 민주주의의 미래는 매우 밝아 보였습니다. 1970년 좌파 진영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36.2퍼센트의 지지율로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었는데, 이는 칠레 극우파와 펩시콜라와 같은 일부 대기업, CIA에게는 저주나 마찬가지인 사건이였습니다. 키신저는 즉시 대응했고, 선거 과정에 군부가 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반대해온 칠레 군 참모총장인 레네 슈나이더 장군을 살해토록 합니다. 결국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칠레의 민주주의는 붕괴하게 됩니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미국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피노체트 독재정권이 벌인 국제적인 암살, 유괴, 고문 협박에 미국 정부가 연계되어 있었으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키신저의 가장 극단적인 행위 가운데 많은 것들이 표면적으로는 반공주의의 이름 아래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만적이게도 키신저의 개인사업은 돈만 된다면 공산주의라 할지라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키신저는 자신의 회사를 통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록히드, 코카콜라, 한국의 대우, 피아트 등의 회사와 거래를 했는데, 중국과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공산권 국가의 회사도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금지, 강제 노동 수용소, 일당 독재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안전한 투자를 보장하는 정권을 위해 키신저는 손발 걷고 외교적 역량을 동원했는데, 그런 모습은 과연 그가 외치던 반공주의가 무엇을 위한 것이였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결국 키신저의 양면성은 미국이 수없이 외쳐온 세계평화와 반공이라는 메시지는 허울뿐인 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뉘른베르크 판결 이후 윈스턴 처칠이 전시참모장이였던 헤이스팅스 이스메이에게 한 말은, 그러한 정치재판에 있어 승자의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다. "전쟁에선 이기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네. 만약 졌다면 자네와 내가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훤하네. 이번 판결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나는 죄 없이 죽는다》 

히친스가 이러한 키신저의 죄목을 상세히 나열한 책을 낸 것은, 키신저가 이러한 명백하고도 수많은 범죄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직까지 벌을 받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키신저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가 말한 '법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격언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만약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이중 삼중의 공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어떤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라고 히친스는 지적합니다. 유명 무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가할 때가 왔다는 히친스의 주장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동안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앞에 떳떳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글

  • 2013/01/04 15: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5 16: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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