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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우스'를 경계하라《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by 착선

어렸을 때 디즈니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설령 극장에 가서 보지 못했더라도, KBS에서 일요일 아침8시마다 방송해줬던『디즈니 만화동산』을 통해 디즈니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라이온 킹』을 비롯해 꽤 많은 수의 디즈니 작품을 봤고, 그중『판타지아 2000』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디즈니는 굉장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는데, 디즈니의 성공이 얼마나 놀라웠으면『라이온 킹』의 판매수입을 자동차 판매량과 비교하며 우리도 디즈니같은 작품을 만들어서 문화산업으로 돈 좀 벌어보자는 글을 본 적도 있습니다.

디즈니가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1997년만 해도 3420만 명이『멋진 디즈니 세계』를 시청했고, 380만 명의 가입자가 디즈니 유선 방송을 봤으며, 79만명이 디즈니 테마 공원을 방문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겨우 1주일치 통계라는 사실입니다. 디즈니는 미디어 및 문화 공간을 좌우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집단의 일부로서 시민정신과 소비주의, 시민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디즈니의 대상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더 중요합니다. 벤자민 바버는《국가》에서 어린이들의 진정한 교사는 학교 교사나 대학 교수가 아니라 영화 제작자, 광고주, 연예인들인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MIT보다 MTV, 하버드보단 디즈니가 더 영향력이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디즈니사의 회장인 아이스너는 디즈니가 지닌 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이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상응하며, 디즈니는 국민 정체성의 보편적 형태를 만들어낸 해설자 역할을 자임한다고 말합니다. 디즈니는 순수함이라는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이상적인 대리 부모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하지만, 순수함의 개념은 디즈니의 상업성, 이데올로기, 권력 추구라는 이미지를 정화해주는 수사학적인 것입니다. 디즈니의 상업적 성공과 아이들에 대한 영향력은 상업문화가 공공문화를 대체하고 시장경제의 언어들이 민주주의의 언어들을 대신하면서, 소비중심주의가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시민정신이 되었으며, 그 선두에 디즈니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리처드 쉬켈은 디즈니를 "맹목적인 애국주의, 자본가들의 도덕에 대한 맹신, 중산층의 섣부른 취미, 인종 차별, 기업의 이윤 조작, 사회의 획일성에 대한 덤덤한 수용을 양산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상상과 환상을 자극하고 순수하고 건전한 모험을 하고 싶은 충동을 유발시키는, 그저 유익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회 문화적 메시지는 많은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정글 북』에서는 인디언을 폭력적인 야만인으로 묘사했고,『알라딘』에선 인종차별적인 노래로 아랍 문화를 묘사합니다.『인어공주』나『미녀와 야수』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수동적인 역할을 강조합니다. 젊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 편견에 도전하는 대담한 여성 전사가 등장했던『뮬란』조차도 그녀의 용기에 대한 대가는 장군의 미남과 연관됩니다.『인어공주』를 통해 여자 아이들은 욕망과 힘을 얻는 방법은 멋진 남자를 잡아서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고 믿도록 길들여집니다. 동화 이론가인 잭 자입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어린이에게 성에 대한 유해한 편견을 심어 준다. 그런데 어른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근본적으로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내재하는 인종차별은 노골적인 표현과 더불어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과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에 대해 복잡한 표현을 기피하는 은근한 태도로 구체화됩니다. 그와 동시에 백인의 형상은 중산층의 사회관계와 가치체계, 언어사용 등의 특권적인 표현을 부여하여 보편화시킵니다. 더욱이 역사나 개발 그리고 식민지적 잔재를 배태하고 있는 서구문화에 대한 대표적인 입장은, 에드워드 사이드가《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말했듯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적인 사고로 자리잡은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해석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비민주적인 사회관계에 대한 찬양입니다. 남성이 통치하고 엄격한 규율이 사회 계급을 통해 지켜지고 지도력은 사회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식의, 표면적으로는 완곡해 보이는 표현들은 보다 엄격한 계급사회, 군주시대로의 회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타협은 복종의 대가로 얻어지고 모든 힘과 권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임을 암시하며, 이런 생각들은 어린이들에게 인종차별, 인디언 대학살, 성차별, 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사고를 가지게 만듭니다.

저자 헨리 지루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단 디즈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루는 우리가 그동안 자본의 논리인 시장의 법칙을 민주주의라고 착각해 왔으며, 얼핏 어린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할 것 같았던 미키 마우스와 같은 유희도 권력과 부의 산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2001년에 나온 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후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소비주의와 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거창한 관점에서의 변화는 알기 어렵지만, 알기 쉬우면서도 인상적인 변화는 있었습니다. 디즈니의 최근 작품인『공주와 개구리』에서 최초로 흑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각색 과정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제기되었고, 여러 부분에서 변경이 이루어진 점을 감안해보면 아직도 지루의 비평은 유효해 보입니다.

덧글

  • 2013/01/22 15: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24 13: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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