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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나는 천국을 보았다》 by 착선

이븐 알렉산더는 어느 날 갑자기 희귀한 뇌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성인 천만 명 가운데 한 명꼴로 걸린다는 대장균성 박테리아 뇌막염에 걸린 것입니다. 이 병은 기억, 언어, 감정, 시청각 능력, 논리 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공격합니다. 치료를 하는 동안 이븐은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그를 치료했던 의사 스콧 웨이드는 치사율이 97퍼센트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작을 일으킨 지 7일만에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임사체험을 한 것입니다. 독특한 것은, 기존의 많은 임사체험자들이 심장에 이상이 생겼을 때 임사체험을 경험했다면, 이븐의 경우는 뇌에 문제가 있었을 때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븐은 이런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많은 부분에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인류는 번개가 제우스의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모든 것을 이해시켜주는 학문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개념도 아닙니다. 당연히 과학은 불완전합니다. 때문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럴 때 기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기적이라는 의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기적같은 역전승, 식물인간의 기적같은 생환 등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일이나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일을 표현할 때 기적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븐 알렉산더의 임사체험은 분명 기적적입니다. 의학적으로 생존 확률이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지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존은 현재의 뇌과학으론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이븐 알렉산더는 임사체험 부정론자였지만, 직접 임사체험을 겪고 임사체험 긍정론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임사체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븐 또한 임사체험시 겪었던 독특한 현상을 설명해줍니다. 그가 표현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세계는 마치 영화『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같기도 합니다. 임사체험자들은 이런 경험을 영적인 세계로 표현하지만, 이들이 전해주는 경험은 현대 종교가 주장하는 영적 세계의 개념과 일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임사체험자들의 현실에서의 환경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독교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천사와 하나님을 볼 것이고,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마호메트나 알라를 볼 것입니다. 케빈 말라키, 알렉스 말라키가 쓴 또 다른 임사체험기와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이 세상에 오직 물질 영역만이 실재한다는 과학적 환원론에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저자는 임사체험을 하면서 매혹적인 사후세계를 보았으며, 임사체험 도중 본 천사의 얼굴이 자신이 만나본 적 없는 누이의 사진과 일치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이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두 세계, 실재의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일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러한 주장의 증거로서, 자기 자신이 즉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은 백조는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의학용어를 빌어 N of 1, 단 하나의 사례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 사례일 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이란 비물질적인 존재다. 영혼은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적 구조로 이뤄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단지 비물질적 존재라고 해서 물질적 소멸 과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 

임사체험 자체는 꽤 많은 사례가 있기 때문에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다른 임사체험자의 주장은 모르겠지만, 이반 알렉산더의 임사체험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개념도 있습니다. 그는 임사체험을 하면서 인간의 깊은 의식 속에는 조건 없는 사랑의 모습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커 켈트너 또한 자신의 저서에서 인간은 착하게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임사체험을 계기로 세상이 모두에게 더 좋은 곳이 될 수있도록 기여하고 싶어했고, 비영리 공공자선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천국이라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의 주민은 현실에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천국을, 현실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덧글

  • 2013/04/09 15: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9 15: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여강여호 2013/04/09 19:10 # 삭제 답글

    임사체험을 종교적으로 확대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랑과 봉사로 승화스킨 저자가 참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 착선 2013/04/13 19:27 #

    저런 체험을 해본 사람들은 그 전과 후가 꽤 많이 달라진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점도 인상깊은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 지성의 전당 2018/08/16 21:14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 사후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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