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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이순신을 영웅시했나?《그들이 본 임진왜란》 by 착선

국가라는 사회형태는 구성원에 대해 일정한 국민의식을 요구합니다. 많은 국가들은 이성을 넘어 무제한적인 귀속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을 키움으로써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이 맡은 역할은 큽니다. 역사는 개개인에게 일종의 정의를 부여하며,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 연구의 성과와 모순되는 논의가 제공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납니다. 역사는 단순히 말하자면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개개인마다, 국가마다 다릅니다. 과거의 역사는 자기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찬양하는 이야기로서의 역사였으며, 이런 민족주의적인 역사 이해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김시덕은 과거 역사기록이 지닌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동북아시아의 국제전쟁,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당사자인 조선, 명나라, 일본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세 일본 사회의 임진왜란상을 결정지은 것은 고문서를 통한 역사기록보다는《다이코기》,《도요토미 히데요시보》,《조선정벌기》,《에혼 다이코기》와 같은 베스트셀러들이였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우리나라의 경우로 예를 들면 김진명의 소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것들이였습니다. 일본의 문헌이 보여주는 임진왜란상이 역사서로서 사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지만, 책이 말하는 내용을 사람들이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이 인식이 현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상, 이러한 인식을 알아두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 나라가 치른 전쟁은 모두 방위를 위한 전쟁이고, 외국이 싸운 전쟁은 침략 전쟁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된다. 자기 나라가 외국을 정복할 때는 문명을 확대하기 위해,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 높은 도덕이나 그 밖의 고귀한 것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믿도록 교육된다. - 버트런드 러셀,《교육과 사회체제》 

일본 근세의 야사, 외전, 군담소설이 묘사하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모습은 우리의 인식과 많이 다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원인을 조선 측에서 찾는 것이 근세 일본 임진왜란 문헌의 특성인데, 옛날 고려가 원나라 군대를 인도해서 일본을 쳤으니 일본이 이 원한을 조선에 갚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명, 조선으로부터 여러 차례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명, 조선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방위, 복수전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일본에게 있어서 임진왜란은 명나라에게 받던 치욕을 갚은 전쟁이며,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등장한 청나라가 일본을 건드리지 못한 것도 일본의 위력에 놀라서였다는 논리를 폅니다. 즉 임진왜란은 일본의 위엄을 전 세계에 빛낸 위대한 전쟁이며, 이러한 인식은 저자의 지적대로 훗날 등장한 제국주의 일본의 맹아적 형태로 나타납니다.

일본의 문헌은 조선은 관료부터 병사까지 무능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였고, 이러한 인식은 명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과 일본 사이에서 무력했던 조선이라는 담론은 어느정도는 현재의 우리나라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한 블로그에서 본 정보에 따르면, 임진왜란에 관련된 공식 기록상 총 전투횟수에서 조선측의 승리가 더 많다고 합니다. 사료와 인식의 불일치는 일본과 명나라의 임진왜란상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증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측은 임진왜란의 3대첩을 1593년 벽제관 전투, 1597년 울산 전투, 1598년 사천전투을 말하는 반면, 한국은 진주대첩, 한산도대첩, 행주대첩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시작된 조선 통신사를 보는 관점도 조선측은 임진왜란때 발생한 포로 문제와 일본의 국정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일본은 조선이 다시 일본에 복속되었기 때문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문헌이 서양 세력이 접근함에 따라 일본 내에선 국수주의적 움직임을 보이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헌의 성향이 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시인《일리아스》,《오디세이아》같은 형태를 취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토 기요마사인데, 조선측은 가장 잔혹한 장수였다고 평가한 데 비해 일본의 문헌에서는 자기 병사들을 사랑하고, 60~70만의 용맹한 조선, 명나라 군대가 가토 기요마사 한 사람의 용맹함으로 인해 물러날 정도로 용맹하며, 조선 사람들이 가토 기요마사를 신으로 숭앙하고 있을 정도로 적에게 자비로운 영웅으로 표현됩니다. 훗날 유성룡의《징비록》등이 일본에 들어가면서 조선의 영웅들도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순신의 재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문헌에서 이순신을 영웅시한 이유는 이순신과 같은 조선 영웅을 이긴 일본 장군은 더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였습니다.

생존 경쟁 속에서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 역사로부터 무기를 주조하는 것은 모든 민족의 권리이다. 어느 민족에게서나 역사는 민족 영웅의 노래이다. 한 민족의 영웅이 다른 민족의 영웅일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1937  

저자는 근세 일본인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것은 일본을, 일본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저자는 과거의 역사학이 사료에 근거해 임진왜란의 사실을 추구하다보니, 일본인들에게 유행했던 이야기는 사료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도외시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야기에 등장한 진구코고가 삼한을 정복했다는 진구코고 담론이 일본뿐만 아니라 도고를 통해 미국까지 건너가 미국 대통령과 미군 장교들까지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건 아니건 간에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역사학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역사는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연대기 작가와 달리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 과정이나 그 사건이 끼친 영향까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역사서의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덧글

  • 2013/06/27 15: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7 15: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行雲流水 2013/06/28 13:35 # 답글

    자신의 패배를 감추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죠. 외부요인을 탓하거나 적을 치켜세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일본인은 후자를 선택한 듯.

    2차대전 참전군인 중 롬멜에 대해 거의 찬양에 가까운 평가가 나오는 것도 롬멜에게 당하던 연합군이 롬멜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해서라고 하죠.

    ...물론 충무공은 지금 봐도 대단한 사람이지만요.
  • 착선 2013/06/28 17:09 #

    이순신의 기록은 객관적으로 봐도 놀랍긴 합니다.
  • 티코햄 2013/07/01 17:41 # 삭제 답글

    임진왜란에 대한 당시 관련국별 관점 차이에 대한 글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얼마전 유사한 책을 읽은 적 있습니다. 정두희 교수님외 여러 역사학자들의 포럼을 책으로 묶은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이었는데 이 책과 연관해서 한 번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정두희 교수님 책에서 언급된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요즘 읽고 있는데, 역사를 보는 관점에 도움이 많이 되는가 같습니다.
  • 착선 2013/07/03 11:35 #

    티코햄님이 말씀하신《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도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네요. 기억해 뒀다가 한번 봐보겠습니다.
  • 음.. 2013/08/10 20:07 # 삭제 답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관점이나 방식이 나라마다, 또는 입장마다 다르다면, 과연 통일된 객관적 역사란 존재하는 것일까요? 차라리 <야생의 사고>의 저자이자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차가운 사회' 즉 역사없는 사회가 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런지... 옹호하거나 지킬 필요가 있는 계급, 권력, 부 등이 필요없는 사회말이죠...
  • greed13 2014/10/22 23:54 # 삭제 답글

    고니시는 일본군 입장에 수군전에 유능했던 장수였고 [전국시대 입장 해군 지휘는 s급] 야스하루는 양학이였지만 적의 약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과감한 선택으로 큰 실적을 이룬 준 명장이였죠. [진전행촌 등 군사적으로 능력은 있으나 실행에 한계가 있어 이렇다할 업적이 없던 장수보다 실상 더 대단한 행동력과 파악능력을 가지고 있던 장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가토는 지휘관으로서 부족함이 없던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재들이 불상을 소중이 여기고 지키기만 했던 일본 승려보다 못한 수준으로 여겨지기 까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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