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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현대국가가 만들어내는 것이다《인종주의는 본성인가》 by 착선

인종주의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인종 간에는 천성적으로 우열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마저도 인구 집단 간 자연적으로 경계가 형성되는 인종들은 존재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인종주의의 기반이 되는 인종이란 구분 자체가 실체가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인종이란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본 적조차 없었다 하더라도, 인종주의자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오늘날 인종주의가 널리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인종주의의 역사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종주의라는 발상은 근대 초기에 유럽인들이 비유럽 세계와 점점 더 많이 마주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인류가 미개하고 야만적인 단계에서 진보해 오늘날의 세련된 문화와 정치적 자유, 여러가지 종교의 형태를 지닌 미신으로부터의 해방, 상업적 번영에 이르렀다고 믿었으며 계몽주의의 기반이 되는 합리성은 주로 분류학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인종의 개념도 자연의 다양성을 분류해내야 한다는 열성과 점점 결합하게 됩니다. 임마누엘 칸트와 데이비드 흄의 저작에서 알수 있듯이, 18세기엔 피부색과 밀접히 연관된 인종 분류에 따라 다양한 민족들의 도덕적, 지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였습니다.

엘리아스에 의하면 서구의 중세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가 아니었다. 엘리아스는 예절에 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한 16세기 이래, 문명화를 통해 이런 인간의 본능적인 삶의 양식이 동물적 또는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되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엘리아스가 문명화과정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보는 것은 바로 권력의 보존과 확대이다. 상류계급은 문명화된 행동의 과시를 통해 하층계급에 대한 거리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위계질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 확산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이 다른 민족과 국가에게 '문명'을 가르치고 강요하려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에로틱한 가슴》p.696 

인종주의의 기반은 유럽과 비유럽의 구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유럽 내부의 불안감을 자양분 삼아 자라나기도 했습니다. 유럽 내 백인 인종끼리 민족과 국가라는 틀로 경계선을 그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등장한 과학적 인종주의는 계급 간 정치적 갈등 밑에 인종이 있다는 시각을 견지했으며, 과학적 인종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으로부터 나온 평등주의 사상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로써 흑인종과 황인종이 열등하다는 점을 입증하려 애썼고,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걸 과학적으로 정당화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인종주의 이론가들마다 자기 구미에 맞는 인종의 범주를 만들어냈고, 민족, 인종, 국민, 시민권, 국민주권 같은 개념들이 융합한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인종주의는 국가적 규모로 나아가게 됩니다.

새롭게 등장한 근대국가는 국가 형성 프로젝트를 통해 중산층 문화를 기준으로 한 사회적 지위, 가정생활, 위생학, 아이들의 양육, 성별에 따른 행동 양식 등을 전체 국민들에게 강제하고자 했습니다. 인종주의적인 사고가 발전하기까지, 민족이라는 발상이 핵심적인 구실을 했고 민족이라는 개념은 '그들'과 '우리' 사이에 주민 집단과 문화 인종을 뒤섞은 새로운 경계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영국과 미국 우생학에 지적인 기반을 둔 사회적 다윈주의와 우생학을 기치로 내건 나치 독일이 일으킨 인종말살, 유대인과 폴란드인, 집시와 공산주의자, 슬라브인과 동성애자를 무차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인종주의의 불합리성과 파괴성이 근대국가의 특성과 결합했을때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하는 사례로 남게 됬습니다.

나치독일의 사례는 전세계적인 충격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인종주의의 모습을 변화시켰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인종주의는 피부색 같은 표현형질이 아닌 문화적 기준을 일차적인 잣대로 쓰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신종 인종주의는 생물학적인 차원을 탈각시킨 채 문화적인 차이와 민족성이라는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인종주의자라는 악명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차별적인 교의와 관행이 단순하게 결합된 단일한 현상이 아니며, 다양한 인종주의들이 존재합니다. 현대의 인종주의자들이 말하는 문화적 차이라는 표현 속에 생물학적이고 피부색에 기반을 둔, 민족의 틀을 빌린 문화적 우열성 개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인종주의와 인종주의 아닌 것, 인종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는 엄밀한 이분법 사이의 기준을 찾아내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인종주의 논쟁이 좁은 틀 안에 갇히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종주의가 발현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방식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인종주의는 다양한 생각, 관행과 결합해 대중문화에 녹아들어가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선천적으로 스포츠를 잘 한다는 편견, 유대인은 머리가 좋다는 편견 등의 인종주의 사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나치독일 이후에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인종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집단, 특히 민족으로 뭉쳐서 동족과 영토를 지키려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인종주의는 자연적인 본성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문화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대인 공동체들의 운명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만 보아도 인종주의를 인간 본성으로 보는 이론에는 개연성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종이란 구분 자체가 허구적이기에, 인종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블랙 라이크 미》p.404 

인종이라는 개념이 아주 엄격하고 분명한 생물학적 차이를 함축하고 있지만, 정작 인종적 범주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합니다. 과거 미국에서 아일랜드인이나 유대인은 흑인 이하의 인종이라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아일랜드인이나 유대인은 백인에 속합니다. 이러한 인종주의의 성향은, 인종은 현대의 산물이며, 18세기 이래로 형성된 민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종이란 개념은 지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 과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생겨난 결과물인 것입니다. 저자는 인종주의적 관점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문화적, 정치적인 행동이 계속 요구되며, 탈민족, 탈인종의 시대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의 이런 지적은 우리 스스로에게 "대한민국은 얼마나 인종주의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나?"는 자문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덧글

  • 2013/07/12 14: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7/16 13: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漁夫 2013/07/12 18:43 # 답글

    개인적으로 인종주의는 '내집단 외집단 가르기'의 한 단면이라고 봅니다. 연령이나 성별에 대한 관념 정도로 강고한 본성이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 착선 2013/07/16 15:34 #

    확실히 그런 용도로 많이 쓰이곤 하죠. 책에서도 바로 근래에 영국의 전 수상 마가렛 대처의 연설 등에 내재되어있는 집단 분리론을 언급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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