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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싸운 한국의 언론인들《1975》 by 착선

평범한 사람이 부패한 거대 권력과 맞서 싸운다는 영웅담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1975》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런 영웅담의 한 종류입니다. 영웅담은 대개 희망차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거나 꿈도 희망도 없는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후자에 속합니다. 독재자 박정희에게 저항했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일명 동아투위의 언론인 113명의 이야기는 우리사회의 비극적 영웅담입니다.

1974년 10월에 젊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이 저지른 민주화운동 탄압과 인권 유린을 보도했습니다. 최근 있었던 철옹성같은 30년 독재를 자랑하던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가 실각한 사건은 언론이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권력자들에게 언론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적이기도 합니다. 1972년에 유신을 선포한 이래 효과적으로 종신지배체제를 굳히고 있었던 박정희도 마찬가지로, 자신에 대한 언론인들의 저항은 최대의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동아일보의 반 독재적 움직임에 대해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에게 광고금지라는 압력을 행사합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많은 미디어가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이것은 미디어 콘텐츠를 변형시키는 가장 강력하고도 영향력 있는 압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보여준 광고를 통한 효과적인 탄압은, 광고와 자유시장은 미디어 소비자가 최종구매자로서 자신의 선택을 결정하는 중립적인 체제를 양산하지 못하며, 결국 미디어의 번영과 생존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광고주의 선택임을 보여줍니다. 결국 동아일보는 자유언론의 길에서 벗어나 정권에 굴복하고 맙니다. 이런 언론의 재정적 기반이 광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특성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또 다른 동아투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온다. 하물며 사건을 다루는 스트레이트 취재가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문화나 특집류 기사에서는 똑같은 보도자료를 배포받거나 같은 인물을 인터뷰하고도 기자의 관점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생산물이 나온다. 그것이 신문의 차이를 만든다.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p.462 

동아일보사는 광고 탄압으로 인한 기구 축소와 사원들의 징계 명목으로 박정희에게 저항한 160명을 대량 해직했습니다. 해직당한 언론인들은 동아일보사 건물 안에서 항의 투쟁을 벌였는데, 동아일보 언론인들이 사옥에서 농성투쟁을 벌이자 박정희는 실전적인 해결책을 지시합니다. 200명이 넘는 괴한들을 동원해 투쟁중이던 피디, 아나운서, 엔지니어들을 폭력을 사용해 몰아냈습니다. 이들은 당시 실시되던 야간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지프에 언론인들을 싣고 갔습니다. 박정희에게 저항하다 강제해직되어 실업자가 된 113명에겐 정보기관의 감시와 미행, 취업 방해, 구속과 연행과 고문, 공민권 제한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언론탄압 덕분에 주요 언론들은 박 정권의 비위를 거스를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쫓겨난 사원들은 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주요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민주화운동과 인권침해 사건을 계속 발행하며 군부독재 정권과 동아일보사를 상대로 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동아투위는 조선투위와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말』을 창간해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6월항쟁에 도움을 주었고, 동아투위의 주요 인원이 기반이 되어 한겨레신문을 창간했습니다. 결국 동아투위는 격변의 한국민주화 운동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몸소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아투위는 38년동안 동아일보사와 정부에 명예 회복과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노무현정부 당시 진실화해위가 동아투위의 사례가 인권 침해임을 인정했지만, 2011년에 정부는 소멸 시효가 지나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격려광고가 번지자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사 경영진과 만나 절충을 벌였다. 정부는 동아 광고 탄압을 풀고, 회사는 비판적인 기자들을 내쫓기로 함으로써 동아는 언론자유를 맞바꾼 추악한 뒷거래를 한 것이다. 그후 동아는 7차례에 걸쳐 100여명 언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비록 모두 직장을 잃었지만 이들 해직기자들은 후일 우리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 p.319 

동아투위 중 25명의 일화를 다룬《1975》는 독재와 싸워온 평범한 영웅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개인적인 삶은 닉슨대통령을 끌어내린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처럼 승승장구하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탄압과 좌빨이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내몰린 동아투위 사람들의 삶을 읽으면 비극적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입니다. 동아투위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말해줬을 때 권력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개인의 삶은 파탄난다는 교훈을 들려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교훈을 들려줄 것인지, 언론 자유도가 하향세중인 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덧글

  • draco21 2013/08/20 14:10 # 답글

    결국... 그런 정권과 그 후신들을 용인하냐 안하냐의 문제이지 싶은데...
    우리나라는 '그래도 된다' 쪽에 있지 싶네요. 기가 막히지만..
  • 착선 2013/08/23 14:20 #

    동아일보가 아직까지 명예복직도 인정하지 않는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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