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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는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by 착선

인도주의는 국가주권을 존중하여 내정불간섭 원칙에 따라 중립적인 물자지원만을 지원하는 적십자식의 중립주의에 기반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부 인도주의 기구들이 중대한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을 주장합니다. 르완다내전과 비아프라 전쟁 등으로 시작된 이 주장은 인권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면 인권의 보장을 위해 국제사회는 불간섭원칙을 깨서 행동해야 한다는 개입론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인권을 국가주권보다 우선시하는 이 흐름은 집단살해방지협약과 고문방지협약으로 시작되었으며 90년대 국제관계를 움직이는 주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 정치적 인도주의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는데,《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에서 언급했듯이 모금운동에 의지하는 인도주의 기구들의 재정문제와 그로인한 사건의 편향적 보도와 과대 보도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인도주의 기구와 인권단체의 보고서가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른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나토와 유엔안보리 및 유엔난민기구 등 국제기구의 비효율성과 비현실성 문제, 전통적 구호물품인 식량구호의 현실성 문제 뿐만 아니라 구제와 보호, 책임성 문제 등 구호 활동가들의 도덕적 딜레마 등 인도주의 활동의 여러 문제점을 제기합니다.

코소보 분쟁 - Carol Guzy, Michael Williamson, Lucian Perkins(2000년 퓰리처상)


알바니아계 주민이 80프로 이상을 차지하는 코소보에서 독립을 바라던 알바니아인들은 1998년 코소보해방전선(KLA)의 공격으로 시작된 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의 공세로 이뤄졌고 세르비아군의 과도한 알바니아계 주민의 학살과 수십만명의 난민이 발생하자 1999년 인도적 개입론자들의 찬성을 등에업은 나토의 군사개입으로 이어집니다. 국제사회는 코소보 문제를 인권문제르 믿고 있었지만 이는 사실 주권과 영토에 관한 분쟁이였습니다. 코소보 분쟁에 대해 나토의 개입은 전쟁범죄와 인권청소를 방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극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나토의 공습 이후 내전 사망자의 대다수가 발생했으며 민간인의 고통을 가중시켰고, 민간인 사망의 부분적인 책임을 발생시켰습니다. 인권과 법치를 보장하는 다민족사회의 건설을 약속했지만, 부정부패가 창궐하고 국제원조에만 의지하는 단일민족사회가 되었습니다. 유엔파견단 또한 사상 최대의 비용을 투입했지만 코소보임시행정기구는 실패작이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일하는 기관은 해직된 알바니아계 전문가들을 활용한 유사정부 뿐이였습니다. 코소보해방전선 또한 소수민족에 대한 조직적인 위협과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군사개입이 전혀 효과가 없었음에도 영국의 블레어총리는 적극개입주의야 말로 서방 외교정책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르완다 분쟁 - AP통신(1995년 퓰리처상)


집권층인 소수민족 투치족과 다수인 토착부족 후투족의 분쟁인 르완다분쟁은 유엔평화군유지군이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유엔군의 규모를 논의하던중 소말리아의 블랙호크 사건이 발생하자 사태해결에 소극적이 된 미국의 반대에 부딪쳐 요청병력의 30%밖에 되지 않았고 유엔의 복잡한 예산처리 절차 때문에 주요 장비를 전혀 보급받지 못한 상태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유엔지원단은 자기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미국CIA는 최악의 경우 50만명이 살해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유엔지원단과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1994년 르완다 대통령과 부룬디 대통령의 비행기가 공항 상공에서 격추되면서 시작된 학살은 8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프랑스군으로부터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도로에서 르완다 여인이 벌채용 칼을 든 젊은 남자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그가 여인의 옷을 잡아끄는동안 여인은 혹시 자기를 죽음에서 구해 주지 않을까 하여 공포 서린 애절한 눈으로 외국인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병사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지프차에 기댄 채 이 저주받은 여인을 쳐다보던 한 병사가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유엔병력은 이 야만적 행태의 구경꾼에 불과하며 현재까지 1만 5천명의 학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 가디언 

유엔지원단의 대부분이 철수한뒤 무장도 못한 캐나다,가나,튀니지,방글라데시 병사 270명이 3만명의 르완다인의 목숨을 구했으며 유엔평화유지군 책임자 달레르는 병력 4천명만 있었더라면 학살을 중단시킬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정부는 유엔안보리가 르완다 사태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것을 막기위해 로비를 벌였습니다. 인도주의 기구들도 대부분 철수했으며 국제적십자와 국경없는 의사회만이 임무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2차 유엔지원단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프랑스의 인도적 개입 선언에 무산되었으며 프랑스의 인도적 개입은 집단살해 가담자의 상당수를 인접국으로 피신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피신자들은 다시 르완다를 공격했고 난민캠프는 살인자들의 비율이 높아졌으며 정작 피해자 및 생존자들은 버림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도주의는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인 것이다. - p.286

이 두 사건 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 분쟁,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에라리온 내전, 비아프라 전쟁, 다르푸르 분쟁, 소말리아 내전, 이라크 전쟁, 스리랑카 내전, 아프가니스탄 침공, 아체 분쟁, 동티모르 사태 등을 인권단체와 인도주의 기구에서 접한 저자는 인도주의 활동과 인도적 개입이 중립성과 독립성을 잃고 정치화된것에 반대를 표합니다. 미국,영국은 물론이고 우리 한국까지 인도주의를 정치논리를 가리는 연막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서구의 개입이 악영향을 초래하자 인도주의 단체 및 활동가들마저 점령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로 비춰져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는 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인권보호와 국가주권 존중의 갈등은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이라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지만 편파적인 판결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엔 침묵한다 - 등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인도주의를 내세운 서구의 정부는 천문학적인 원조자금을 광고하지만 2008년 3월 인도주의 기구들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는 아프가니스탄에 약속된 원조금 200억 달러 가운데 100억 달러가 미지급되었고 도착한 금액 가운데 40퍼센트는 컨설팅 비용으로 소비되거나 영리기업의 호주머니로 돌아갔다고 밝혔습니다. 실질적으로 정말 필요한 난민들에게는 평균적으로 5퍼센트밖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구호활동을 돕기 위해선 인도주의의 정치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덧글

  • 로리 2013/10/31 13:23 # 답글

    그러나 돈과 자본(여기엔 인력이나 여러가지 것들)이 들어가는 활동이 정치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참 어려운 문제이지만요
  • 착선 2013/11/01 14:26 #

    그런 부분도 있죠.
  • 설봉 2013/11/12 17:00 # 답글

    민족, 종교, 과거사 등 다양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특정 사회 내지는 국가의 분란(극적으로 치달으면 내전)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문제는 사실상 답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결과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부기지수고... 차라리 UN 연합군을 대대적으로 파병해서 반군이고 정부군이고 싹 쓸어버리고 일정 기간 식민 통치를 하는 쪽이 그나마 현실적일지도요. 물론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니 결국은 또 예전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그럼 또 분쟁이 다시 시작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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