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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의 꽃《국경 없는 의사회》 by 착선

이 책은 전쟁중의 비아프라 공화국에서 적십자 활동을 펼치다가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느낀 프랑스의 의사와 언론인들이 1971년 창립한 '국경없는 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 MSF)'를 다룬 책입니다. 책에서는 모든 재난의 피해자들은 전문적인 치료를 신속하게 그리고 차별없이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내세운 이 단체의 르완다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MSF를 통해 생각해봄직한 문제들, 인도주의에 관한 난세들을 생각해볼 질문을 제시하고 있기에 240여페이지의 짧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MSF는 1972년 니카라과 지진을 시작으로 전세계 재난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으며 20개국의 지부와 3천여명의 의료원, 1만여명의 자원봉사자가 회원으로 활동하며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정치적 전술로 시작된 현대적 대량학살의 전개는 19세기말의 터키의 1895년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을 시작으로 독일, 러시아, 캄보디아,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 인도, 파키스탄, 유고, 브라질, 과테말라, 파라과이,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라이베리아, 중국 등지에서 점차 발전하여 20세기에 1억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MSF 책의 배경이 된 르완다의 대량학살 또한 르완다를 식민지배한 독일과 벨기에의 영향이 컸음을 지적합니다. 기존의 르완다는 귀족계급인 투치족과 하위계급인 후투족으로 구분되었지만 후투족도 돈을 벌면 투치족과 같은 신분이 되는 등 개방적인 계급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식민제국들은 거짓 인종이론을 전파하여 인종차별주의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계층간의 이동을 막음으로서 후투족은 노예가 되었고 자연스레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전제적인 정치적 파워를 가진 자들의 의도된 명령에 따른 무자비함과 관련된 대량학살은, 가해자들이 현대의 모든 첨단기술과 조직적 자원을 채용함으로써 계획된 집단살상을 체계화하고 완성한다. - 아놀드 토인비

195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이 다가올 즈음, 1인1표 체제에서 인구가 많은 후투족에게 질 것을 예상한 벨기에는 투치족을 외면했고, 후투족의 반란으로 1~10만여명의 투치족이 학살당했습니다. 1967년 또 한차례의 대규모 투치족 학살이 있은후 1990년 투치족 망명 집단, 르완다 애국전선(RPF)도 공세에 나서게 됩니다. 국영 라디오에서는 "아직 묘지가 남아있다. 모조리 죽여라" 라는 선동을 서슴치 않았으며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하는 대량학살이 감행되어 100일동안 100만여명이 죽었으며 상해,강간,테러를 당한 사람은 더욱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군벌들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이용했고 난민촌에서 UN보급품과 무기상들에게 무기를 구입하며 자기편의 민간인을 상대로 약탈과 강간을 일삼게 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무기밀매상으로 나오는 영화 [Lord of War]에서 나온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난민촌을 달리며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대량학살은 현대적 형태의 사회공학이며 이성적으로, 행정적으로 조직된 권력이 개입한 계획이다.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더 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향한 큰 비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 비전속에서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며 집시,자본주의자,공산주의자, 동성애자,유대인 등 치유 불가능한 방해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먼

MSF를 바라보며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이 하루 서너시간의 수면과 각종 벌레와 뱀 쥐와 함께 생활하며 극도의 더위와 추위를 이겨내면서 때론 민병대에게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MSF회원들을 경외의 눈빛으로 보게 됩니다. 그들이 몇백달러에 불과한, 그야말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것은 일반인은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강조하는것은 MSF인들을 가장 성가시게 하는것은 그들을 영웅 취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은 영웅적이거나 이상적인 동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취업 대기중이거나, 모험과 좀더 의미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을 좋아하고 '이런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동기를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그런 힘든 일을 하면서 자그마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과, MSF일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면 일종의 정신적 탈력을 잃어버리며 대부분은 다시 MSF를 하러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가장 힘든 일은 MSF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는 일이다. 떠남과 동시에 그들은 세상의 중심에 연결돼 있던 모든 끈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그들은 엄청난 긴장상황과 궁핍, 고된 노동 속에서 피어난 짧은 로맨스와 따뜻한 우정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친밀함의 상실과 무료한 일상이라는 이중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다시 돌아오고, 또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MSF인들이다. - pp.235~236

정치적인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곳에서, 난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영웅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특별하지 않는 범인(凡人)이라는 증명은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한 희망적인 잠재능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난민은 서로를 구호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MSF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MSF, 더 나아가 인도주의자와 인도주의산업은 결국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문제점을 지닙니다. MSF 내부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이 문제는 선진국들이 대부분의 폭력사태를 유도, 조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은폐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과 그런 정치조작을 견제하고자 미디어, TV의 관심을 끌다보면 미디어의 관심이 있는 곳만 지원이 간다는 점 등을 들고 있습니다. MSF의 활동자금은 지극히 정치적 이유로 조성되지만, 그 돈을 비정치적이며 독립적인 방향으로 써야 하는 모순이 있습니다.

"화해가 이루어질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투치족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려 깊은 하산은 한참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요. 그러나 화해할 수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그는 그 근처에서 있었던 1994년 대학살에서 형제 둘을 잃은 사람이였다. - p.59

정치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도움을 받은 환자가 다시 AIDS나 굶주림, 강간, 약탈 혹은 군인들에게 살해당해 원조했던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딜레마는 계속되게 됩니다. 자이르와 라이베리아의 다이아몬드, 금 등의 재화를 노리는 선진국들과 아프리카 군벌들의 정치적 행동이 멈추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날 것입니다. 그에 비해 구호는 너무나 늦습니다. TV에서 난민들이 비춰지고, UN에서 구호가 결정되었을 때는 이미 수십 수백만명이 학살당한 뒤입니다. 신속한 행동을 강조하는 MSF는 때로는 그 신속함 때문에 일어나는 실수, 자원낭비 등을 대가로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구열강이 아프리카를 잡아먹고 발전한지가 수백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프리카는 서구열강의 손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프리카에도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평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빌딩숲이 될 것일지 평화로운 농업대륙이 될 것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MSF같은 신속한 구조단체로 인해 한명이라도 그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MSF는 인도주의의 꽃이라 불리울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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