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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한 존재가 이룬 위대한 업적《초파리》 by 착선

진화론은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 정론으로 채택된 이론이지만, 다윈이 생존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진화론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론이었습니다. 당시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은 유전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 종 내에서 변이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이 변이가 어떻게 나타나고, 물질적 기반은 무엇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해지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윈의《종의 기원》은 살아남은 이론이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살아남은 것은 다윈과 후대의 수많은 학자들, 그리고 초파리의 힘이 컸습니다.

생물학은 과거엔 신학의 연장이었습니다. 생물학의 목적이 신이 이룬 위대한 설계의 복잡성을 관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물학을 이끌던 사람들은 박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자연계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생물학적 유물론이 대두하게 되었고, 생물학은 신학을 버리고 실험생물학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생물학이 실험을 받아들이면서 동물행동학, 진화론, 생리학 등의 분야로 분화해 가기 시작했고, 생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 개념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용 생물로 적합한 동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개, 고양이, 비둘기, 쥐 등이 가장 이상적인 실험동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동물을 실험용으로 선택하느냐로 인해 생물학자들 개개인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틀림없이 다윈은 무덤 속에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을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기록, 동식물 사육에서 얻은 게 전부였다. 그 증거들은 특별한 것이었지만,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것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 증거라는 정통성을 더해 주었다. 초파리 대신 핀치를 조사했던 것이 그의 불운이었다. - p.141 

초기 실험생물학에서 초파리는 하등생물로 취급당했고, 젊은 학생들의 실습용 동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초파리의 가능성을 알아챈 사람이 컬럼비아대학의 토머스 헌트 모건이었습니다. 모건은 우연히 초파리의 눈 색깔이 자연발생적으로 변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건은 돌연변이를 통해 역으로 진화과정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나타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개체수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이러한 조건에 초파리는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파리는 과일 껍질만 있어도 풍족하게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성이 탁월했고, 일 년 내내 번식하며, 12일마다 새로운 세대가 생기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을 압축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선형적이고 이성적이며 질서정연한 세계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가정하면 발생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기형들은 그런 소용돌이를 반영한다. 기형은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며 우리의 자기만족에 도전장을 내밀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고정관념에 맞서게 한다. -《자연의 농담》p.56 

결국 모건과 초파리가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세우게 됩니다. 모건은 초파리에서 유전의 물리적 바탕이 세포 속의 염색체이 있음을 입증했고, 유전자들이 염색체에서 직선으로 늘어서 있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유전자 지도 또한 초파리의 것이었습니다. 초파리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초파리는 가장 선호하는 실험동물로 떠올랐습니다. 초파리 몸의 청사진은 일반적인 생물의 신체 형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 주는 유익한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초파리를 연구한 학자들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일상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고,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제인 구달과 같은 사례를 제외한다면 초파리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일이었습니다.

초파리가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것들은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틸리는 초파리 연구를 통해 학습 장애를 유전자적으로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더 나아가서 뇌졸중 환자,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치료하는 미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기억 조작과 같은 SF적인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초파리는 인간이 왜 술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진화적 기원에 통찰을 제공해주며, 짝짓기를 둘러싼 진화 게임에서 암컷과 수컷에 대한 관계에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장수 유전자의 발견입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이 붙은 이 유전자는 평균 수명을 35퍼센트나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신체 또한 보통 초파리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오래 살고 싶다면, 섹스를 아예 포기하는 쪽이 나을지 모른다. 만약 무성 생식이 노화를 막는 열쇠라면, 우리에게 불로 장생은 생각만큼 먼 목표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전체 인류 중 절반인 '여성'만 가리킨다. 어느 모로 보나 수컷은 무성 생식을 하기에 부적합하다. 여러분이라면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섹스를 포기하겠는가? - p.225 

초파리는 유전학을 탄생시켰고,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을 결합시켰으며, 20세기 생물학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획기적인 사건들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초파리는 거의 모든 생물학의 주인공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초파리를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개구리, 생쥐 등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덧글

  • 2014/01/24 13: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24 14: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漁夫 2014/01/24 14:58 # 답글

    아마 책 중에 언급이 있겠지만, 사람 정도 크기가 되는 것이 뭐건 무성 생식하려면 최소한 '오래 사는 것'은 포기해야 하겠지요. 늙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요...
  • wonhee0118 2014/01/24 19:18 # 답글

    담부턴 여름에 초파리를 죽이면서 애도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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