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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는 왜 존재하는가?《죽은 자의 정치학》 by 착선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현충원에 갑니다. 공식선거운동의 시작을 현충원에서 하는 정치인도 있습니다. 그만큼 현충원, 국립묘지는 특별합니다. 국립묘지에는 죽은 자들만 묻혀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사상이 존재하고 정치가 존재하고 권력이 존재합니다. 국립묘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를 예상하게 합니다. 목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자 하상복은《죽은 자의 정치학》을 통해 국립묘지의 이데아를 매력적인 언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세 나라의 국립묘지를 비교함으로서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의 신체입니다. 왕의 몸은 하나의 이미지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상징성은 죽어서도 유지됩니다. 그러나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왕이라는 한 인간의 몸에 집대성되던 정치적 이미지를 소실시키고 국민이라는 관념을 도입합니다. 왕과 달리 국민은 물질도 아니고 육체도 없는 근대국가의 이념들을 체현하는 정치적 의지의 개념적 집합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단일한 정치적 통합체를 현실로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근대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 하나하나가 곧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은 스스로 국가를 지켜야 하는데, 이는 죽음마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죽음마저 불사하는 자랑스러운 국민을 위로할 상징적 장소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국립묘지입니다. 국립묘지는 묘지에 들어올 사람을 선정함으로서 현 체제의 국가가 어떤 인간상을 원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국가로서는 그들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민적 충격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일 경우 상황은 더 예민해진다. 죽음의 방치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헌법적 조항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고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71 

프랑스의 국립묘지, 빵떼옹은 앙시앵 레짐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적 시기에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는 왕과 신을 떠나 자유와 평등을 받아들였고, 빵떼옹은 혁명이 요구하는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강베타, 볼테르, 루소 등의 인물들이 안장되면서 빵떼옹은 위인들의 삶과 몸에 함축되어 있는 공화주의 이념과 가치를 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나폴레옹과 왕정복고 시대엔 빵떼옹이 다시 만들어졌고, 결국 완전히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면서 현재의 빵떼옹이 됩니다.

미국의 국립묘지, 그중에서도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이 야기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연방 해체라는 정치적 위기 끝에 남북전쟁이 일어났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북부의, 북부에 의한, 북부를 위한 공간이 되어야 했습니다.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북부의 군인뿐이었고, 북부의 사상에 동조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국립묘지를 통해 연방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북부의 병사들은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국민으로 부활했지만, 남부의 병사들은 반역을 기도한 적으로 간주되어 국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국립묘지의 추모의례는 단순히 사자의 위로가 아니라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분리를 완성시키는 문화적 공간이자 행위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립묘지는 여순사건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고 6.25 전쟁으로 인해 만들어졌습니다. 광복 이후 새로운 체제가 출범했지만 아직 국민적 정체성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어난 두 사건은 반공주의라는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고, 이승만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의 현충원은 반공주의에 추가로 군사주의와 민족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현충원 역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4.19, 3.15, 5.18 민주묘지가 등장해 국립 현충원과 대립구조를 만들었고, 2005년에 있었던 북한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나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현충원 안장은 현충원이 지닌 반공주의와 군사주의의 상징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민주묘지가 건립되면서 애국의 공간으로서 국립묘지의 유일함과 절대성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더 이상 보통명사 국립묘지가 아니라 국립 현충원으로 호명되어야 했다. 두 국립묘지는 단순히 명칭만이 아니라 역사와 이념에서 다르다. 현충원이 독립과 호국의 가치로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희생과 충성이라는 국가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민주묘지는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권력과의 정치적 긴장을 말해주고 있다. 현충원이 권력의 표상을 중심으로 사자들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계급 논리로 포섭되고 있는 반면, 민주묘지에는 자유와 민주를 지향한 사자들이 평등을 표상하는 공간에 잠들어 있다. - p.450 

국립묘지는 변화합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국립묘지는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분열과 갈등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조형되었지만 프랑스는 빅토르 위고의 안장,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남부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화해와 통합의 기억을 표출하는 정치적 장소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국립 현충원이 여전히 본래의 이념과 가치인 반공군사주의를 고수하면서 국민적 연대와 결속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강고함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립묘지와 민주묘지의 대립은 가치의 분열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충원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박정희 대통령묘와 전재규 연구원의 묘의 크기를 똑같이 만드는 것과 같은 파격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좌와 우,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묘지를 대안으로 말합니다. 그로 인해 저자가 원하는 것은 국립묘지를 통한 정치적 화해인 것입니다.


덧글

  • 2014/04/23 02: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29 19: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백범 2014/04/25 15:09 # 답글

    국립묘지? 솔직히 별로 슬프지도, 감흥도 오지 않으면서 가서 참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슬프지도, 감흥도 오지 않으면서 "단지 타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지로 가서 참배하는 그런 문화는 이제 좀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나이든 사람들은 몰라도 지금 40대 이하, 아니 40대 초반까지는 그런 것에 별로 감동을 못 느낍니다. "쟤들 왜 저래" 라는 반응 아니면 의례행사 정도로 여기고 별 관심을 안 갖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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