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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는 왜 유명해졌나《모나리자 훔치기》 by 착선

2년 전에 스페인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산투아리오 데 미제리코르디아 성당에 있는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모양으로 훼손된 일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프레스코화가 훼손되자 그전보다 관람객이 더 몰렸다는 사실입니다. SNS 시대의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은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스페인의 이 이야기는 미술품에 대한 독특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러 갔는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 미술작품 하면 누구나 첫손에 꼽을만한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주택 도장공이었던 빈첸조 페루지아가〈모나리자〉를 훔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모든 미디어에서 사건을 조명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모나리자〉를 보러 갑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소에 미술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보려고 몰려든 것은〈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간이었습니다. 예술작품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없기 때문에 보러 간 것입니다.〈모나리자〉는 더이상 과거의 작품과 동일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작품들보다 월등한 인기를 얻게 된〈모나리자〉는 새로 만들어진 역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자 다리안 리더는〈모나리자〉도난사건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을 바탕으로 미술에 대한, 더 나아가 우리의 시선에 대한, 보는 것이라는 행위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시선은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눈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만 붙여놔도 절도행위가 줄어드는 심리학 실험이나 문신, 혹은 페르소나에 대한 연구는 이미지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라캉은 보는 사람과 시각적 이미지 사이의 비대칭성에 주목했는데, 인간이 이미지나 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나 상이 인간을 포획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회피합니다. 라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시선에는 선의가 아니라 악의의 차원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심리엔 악의와 욕망이 가득한 타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 시선을 그림에 가두어 화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미술작품은 타자의 시선을 그림에 집중시킬 뿐만 아니라, 그 시선을 타자 자신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대표적인 기법이 원근법인데, 평평한 종이에 그려지는 이 독특한 시선처리로 인해 바라보는 주체가 바라봄을 당하는 주체가 됩니다. 즉 우리는 미술작품을 통해 거울은 아니지만,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 p.134 

그렇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텅 빈 공간에서 태어나고, 텅 빈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미술작품은 미완성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 합니다. 완전한 누드보다, 살짝 가려져서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더 에로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런 욕망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어있고, 미완성인 그림을 보면서 공상적인 사유를 발휘해 그것에 욕망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봅니다.〈모나리자〉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심리에도 사라진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모나리자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모던 아트가 제공하는 텅 빈 공간을 보려고 미술관과 화랑에 가게 되는 세기를 맞이합니다.

그림이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비가시적이었던 모든 것이 시선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모나리자〉도난 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모나리자가 관람객들에게 신비에 싸인 존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팜므 파탈이라는 문화적 현상이 등장하고, 고티에와 페이터같은 사람들이 회화에 대한 평문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평론가들은 모나리자의 미소에 팜므 파탈의 모든 특징을 부여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것의 상징이 되었고 도난 사건 이후 그녀의 이미지를 사용한 광고 열풍이 이어지면서 그처럼 기이한 양상은 영원한 것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 현실 속에 감추어진 것만 찾으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모나리자〉가 도난당함으로써 비로소 우리가〈모나리자〉를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은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던 텅 빈 공간 사이의 분열이 드러나는 극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극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미술작품이 사라지지 않아도 이 텅 빈 공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보는 사람의 심리를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써〈모나리자〉를 보고 있는 사람의, 스페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덧글

  • 2014/05/22 09:48 # 삭제 답글

    흥미로운 내용이군요. 이미지나 상이 사람을 포획한다는 말에 동감이 갑니다. 그러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타자의 시선을 자신으로부터 그림으로 돌리려는 시도라는 해석엔 공감이 가지 않는군요. 수많은 화가들이 대중의 시선을 자기에게 끌기위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점은 어떨까요? 물론 순수한 예술적인 동기로 그림을 그린 화가도 있겠지만요.

    마지막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라는 말은 굉장히 인상적이군요. 다음에 제가 예술작품을 보게된다면, 아마 이 질문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저도 스스로 궁금해 집니다. 난 무엇을 보려고 예술 작품들을 보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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