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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왜 사회문제에 분노하지 않는가?《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by 착선

현재 우리나라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공론화되어 있습니다. 홈에버, 남양유업 사건 등 다양한 사건사고를 통해 파견직,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되었고, 최근에 있었던 땅콩회항으로 알려진 대한항공 사건은 재벌가 문제, 갑질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론화는 더 빠르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반면, 그것을 개선시킬 저항의 원동력은 부족합니다.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학자들과 기성세대는, 왜 젊은이들이 저항하지 않는지 궁금해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수백억 원을 가지고 있는 재벌가 어린이들,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실업 문제, 1%대 99%로 대변되는 부의 불평등 문제 등 젊은이들이 저항할만한 뚜렷한 목표도 존재합니다. 전태일 세대에서, 더 과거의 역사를 비춰보더라도 저항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저항하지 않는가?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사회가 절망적이기 때문이 가능합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희망을 포기했기에, 젊은이들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도, 갑과 을의 불합리한 관계도, 상위 1%가 사회의 부를 쓸어가더라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더라도 젊은이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값비싼 음식도, 자동차도, 집도, 결혼도 포기한다면,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만한 사회인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겐 값싼 정크푸드가 있고, 월 2만원에 즐길 수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SNS,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성욕을 해소한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하고, 잠을 청할 수 있는 3평짜리 고시텔도 곳곳에 있습니다. 고도성장의 풍요는 젊은이들에게 절망과 동시에 행복을 안겨줬습니다.

이제껏 일본은 경제 성장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려왔는데, 돌연 경제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일본은 모두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를 희생하면서 경제 성장을 선택한 일본, 어쨌든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벌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p.307
경제성장의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더글라스 러미스보다는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와 유사합니다. 언젠가 민주주의의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에선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미 일본 젊은이의 '이등 시민화'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꿈' 혹은 '보람'이라는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젊은이야말로 저렴하고 해고하기 쉬운 노동력이라는 점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며, 이 노동력이 존재하는 한 사회의 바퀴는 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변화의 시기는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결혼의 포기, 최소한의 소비생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점차 감소해 그 특이점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대 간 격차라는 문제가 지목하는 피해자는 사실 젊은이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젊은이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고용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가장 곤란해지는 쪽은 '젊은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업이다. 마땅한 고용 대책과 합리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단지 '젊은이들'이 가엾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본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 pp.285~286
저자는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반란은 베이비 붐 세대라는 거대한 젊은 층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의 주역은 젊은이들이었고, 젊은이들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주역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무언가 높은 대상을 향해 분발하기보다는, 친구 관계 등 자신과 가까운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치는 부담스럽고, 투표는 거추장스러우며, 혁명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격차사회라든가 블랙기업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도, 젊은이들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 대규모의 변화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땅콩회항은 사회문제라기보단 한 순간의 유흥의 영역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공헌을 희망하는 젊은이의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고 포기했고,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왠지 불안합니다. 실제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만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은 많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상의 답답함을 깨뜨려 줄 만한 매력적인 사회공헌 방법을 찾고 싶지만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이런 욕구를 통해 등장한 것 중 하나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 재특회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들이 일반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길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를 끊없이 외치는 것처럼, 자신들이 찾은 진실, 애국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사회가 침해되거나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가 지적을 당했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도쿄 도는 '청소년 건전육성조례 개정안'에 '만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고 해도 나이가 18세 미만인 경우, 이것을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을 넣으려고 했다. 아동 포르노와 달리 실재하는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실재청소년'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민주당 도쿄 도 총지부 연합회 간부의 사무실로 전화가 빗발쳤다. 그 결과, 개정안은 조문을 바꿔 12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결됬다. 하지만 반대 운동은 1년 가까이 지속됐다. '내 주변 세계가 변할지도 모른다'라는 위기감이 사회적인 행동으로 분출한 것이다. - p.219
저자는 젊은이들이 결코 사회문제에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 국가나 민족, 사회와 같은 것에서 가족, 친구와 같은 형태로 변했을 뿐입니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국가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이 나면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서겠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젊은이는 가지 않겠다고 답합니다. 애국심과 내셔널리즘도 아직은 어느정도 유효한 가치관이지만, 그것을 대체할만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자는 절망과 행복이 공존하는 이 시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하며, 과연 이 다음 시기에 사회가 절망으로 가득차 극적인 변화와 파괴가 일어날 것인지, 행복의 시대를 연장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는 있다고 말합니다.


덧글

  • 2015/01/20 18: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01 22: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lueman 2015/01/21 01:31 # 답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착선 2015/02/01 22:26 #

    저자도 '젊은이' 라서 흥미로웠습니다
  • 오린간 2015/01/21 19:33 # 답글

    고용제도가 결국 기업에게도 문제가 된다는 부분은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그래야 기업도 좀 바뀔테니까요.
  • 착선 2015/02/01 22:27 #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줬으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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