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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외치는 혁명의 편지《분노의 그림자》 by 착선

최근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ISIL부터 오사마 빈 라덴으로 유명한 알 카에다, 그 외에도 코소보의 KLA, 레바논의 PLO, 아일랜드의 IRA, 콜롬비아의 AUC 등 다양한 무장단체들은 로레타 나폴레오니가 의사(擬似)국가라고 지칭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AK-47, RPG-7, 검은 복면 등의 공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무력을 통해 지역권력을 행사합니다. 1994년에 멕시코에서 또 하나의 무장단체, '사파티스타 EZLN'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장단체가 흥미로운 점은, 다른 무장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총과 칼로 권력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자신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치아파스 주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지닌 땅입니다.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은 500년 전부터 노예제와 투쟁했고, 대 스페인 독립 전쟁에서 싸웠고, 북아메리카의 팽창 정책에 저항했으며, 프랑스인들과의 전쟁에 참여했고,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 정권을 거부했습니다. 옥수수와 커피, 소, 석유 등 매우 풍족한 자원을 생산하는 이 땅은 언제나 약자들이 살아왔고, 언제나 빼앗겼으며, 계속 싸웠습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치아파스 주의 사람들 역시 세계적인 착취 구조의 희생양이 되었고, 언제나처럼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자, 치아파스 주민들은 경제적인 생존 가능성 자체가 희박해질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정치조직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결성해 멕시코 독재 정부에 전쟁을 선언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치아파스 주민은 존엄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타고 태어났으며, 1824년의 합병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탈과 반란의 긴 연쇄 고리에 의해 이 나라에서 착취당하는 다른 사람들과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성직자들과 무장 군인들이 이 땅을 정복한 이래, 이 폭풍이 휘몰아치는 하늘 아래서는 존엄과 반란이 살아 숨쉬며 퍼져 나갔습니다. 집단 노동과 민주적인 사고, 다수결의 원칙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전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남을 수 있고, 저항할 수 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이 "나쁜 생각들"은 "소수의 손에 많은 것을" 이라는 자본주의 교훈에 반하는 것입니다. - pp.79~80
사파티스타는 한밤중에 산 크리스토발 광장의 정부 공관에 나타나 '라칸돈 정글의 선언'을 발표하고 정글로 돌아갔습니다. 멕시코 제도혁명당 독재 체제를 거부한 사파티스타는 결코 군사적인 능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사파티스타 공동체로 의심이 가는 마을을 공중폭격했고, 가혹한 탄압과 회유책을 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12일간의 무장투쟁을 통해 그들은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야 했고, 누가 보더라도 금방 진압당할 작은 해프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려 21년이 지난 2015년에도 존립하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펜이었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은 사파티스타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말입니다. 사파티스타는 공동 성명과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편지를 통해 언어의 총알을 만들어내었고, 언어의 전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미디어와 서구 언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반란의 언어를 내보내며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는 편지의 말미에 언제나 민주주의와 정의, 자유를 외치는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명령하는 사람들이 복종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회적 기획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권리와 기획에 찬동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모든 기획이 지향하는 것은 반드시 정의여야 하는 기본 전제를 만들기 위해 투쟁합니다. 사파티스타가 틀에 박힌 혁명 이론과 가장 분명한 단절을 보인 것은 그들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인데, 그들의 승리는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혁명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밟아야 할 중요한 단계로 인식했다면, 사파티스타의 혁명은 어떤 특정한 사회적 기획을 가진 당이나 조직, 혹은 제휴 조직들의 승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제안들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민주작 공간의 창출이며, 그 목표에 사파티스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경험에 반하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전통이나 관습 또는 권위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을 요구하는 확실성이 우리가 경험한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기표현은 그 뿌리에서부터 방해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자유의 조건은 늘 권력이 강요하는 규범을 광범위하고 일관되게 회의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복종》p.268
사파티스타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이 의회에 참여하고, 명령하며, 복종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멕시코 독재 정부 시절보다 더 나은 경제적 환경과 복지를 제공했고, 그 결과 치아피스 주를 자치하는 정치조직이 되었습니다. 사파티스타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입성해 정부와 아무 충돌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하고 다시 자신들의 기지로 돌아갔는데,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거부한 검은 복면의 무장단체가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독재적 언어도,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선진 세계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도 거부하며 투쟁하는 사파티스타의 반역적인 상상력은 94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덧글

  • 2015/02/27 14: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2/27 22: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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