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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내 마음 보고서》 by 착선


주어진 역할이나 소속된 집단 및 문화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내면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주변환경에 '눈높이'를 잘 맞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자신의 욕구보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품이나 능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는데 이러한 태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상황의 요구와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욕구와 감정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런 특성은 대인관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관계를 맺을 때 형식적인 관계와 친밀한 관계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와는 별개로 관계마다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그에 따라 상대의 의견과 입장을 적절히 존중합니다. '해야 할' 일과 관련한 영역에서는 자신의 욕구나 불편함을 잘 참을 수 있고 목표에 대한 헌신성도 상당합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안해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떠들썩한 자리나 모임에서는 왠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 때문에 금세 피로를 느끼곤 합니다. 따라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종종 수동적 참여자의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의외로 즐겁게 대화를 이끌어가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생각은 많지만 표현은 단답형으로 짧고 간결하게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거나 있는 그대로 이해받기 어려울 것입ㅈ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내면은 외롭고 허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반복해서 돌아보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합니다. 스스로는 객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어진 모든 일에 대해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소한 자극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더 의식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점차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고 그 결과 자신감도 떨어지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기초적이고 세밀한 부분을 점검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서적으로 끌리는 일보다 이성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며 감정을 표현하는 데도 인색합니다. 특히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감정에 직면할 경우 거의 자동적으로 이를 억누르려는 내면의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때로 감정의 가치나 중요성을 경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 사회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기 십상입니다. 때로 감정을 일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한 것으로 느낄 개연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성 자원이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누리려는 욕구도 강하고 행복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감성 자원을 자유롭게 드러내기보다 통제하는 쪽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중요한 내적 동인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의미와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입니다. 일종의 애정 욕구로, 현재는 사회적인 인정에 대한 욕구로 집중되어 나타납니다. 여기서 인정은 사회적 성취를 통한 타인의 인정 같은 외적인 피드백뿐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내적인 피드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여 성장을 극대화하려는 자기실현 욕구, 즉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려는 욕구로 이어집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무슨 일이건 대충 하지 않고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면에선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며 일정한 사회적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심리적 자산이 됩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에 대해 특별한 거부 반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이런 느낌을 받으면 그의 다른 특징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밀어냅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여 행동한다는 느낌이 들면 특별한 호감을 가집니다. 그런 상대는 과대평가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등의 느낌과 관련된 사람을 접할 대 사람에 대한 판단오류가 가장 높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느낌의 사람을 대면했을 경우 판단을 잠시 보류하거나 개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주위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덧글

  • 지성의 전당 2018/09/07 19:39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 명언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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