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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를 마시면 북극곰을 구할 수 있을까《저항 주식회사》 by 착선

글로벌 거버넌스는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NGO, NPO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린피스, 월드비전, 국제보전협회, 환경보전기금, 수잔 코멘 유방암 재단, 옥스팜, 시에라클럽 등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들은 시민들에게 정부나 기업들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받으며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비영리단체들이 활동을 통해 정부나 기업의 권력을 견제하거나, 더 친환경적인 세상을 만들고, 약자와 어린아이들을 돕고, 빈곤과 싸울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저자 피터 도베르뉴와 제네비브 르바론은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이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비영리단체의 제도화, 운동의 제도화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빌리자면, 가능성의 한계입니다.

존 던이《민주주의의 수수께끼》에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모든 의심을 인정하지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의심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칙도, 대안도, 그것은 민주주의의 틀에서만 존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는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심지어는 상식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환경오염의 해결책도, 빈곤을 극복하는 방법도, 빈부격차에 대한 대안도 전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영리단체의 저항도, 투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영리단체 자체가 자본주의화되었고, 기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법들은 자본주의적입니다.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 기업의 후원에 의지하게 된 원인에는 경제의 세계화 과정이 있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게 되면서 사회복지는 점점 기업에 의지하게 되었고, 기업의 자선은 정부의 재원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행정부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활동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지원금은 단체의 행사비용등에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월급과 임대료, 기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합니다. 비영리단체의 직원으로 NPO 공동회의의 컨퍼런스에 갔을 때 언제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는 모금 마케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비영리단체가 활동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시민들의 성금이나 회원들의 회비는 주요한 수입 중 하나지만, 더 매력적인 것은 기업의 후원입니다.

비영리단체가 기업의 후원을 중시하는 것은 자본주의로 인해 시민들의 사회생활이 사유화, 파편화되면서 운동과 정치에 참여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노동과 소비, 휴가에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지역사회와 작업장의 유대, 문화 행사, 급진적 토론을 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지역 신문, 노조 활동 등의 하부구조가 존재해 사회운동은 일상적인 사회적 구조에 뿌리내릴 수 있었고, 저항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적 기반이 무너지면서 비영리단체의 기반도 위태로워졌고, 과거보다 더 기업의 후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기업의 후원에 의존하다보면 단체의 목적이나 현장의 필요성보다 타협과 실용주의,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과 기업을 위한 편익을 더 우선시하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저항이 줄어든데다 9.11이후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정부의 강경대응은 비영리단체가 시위와 같은 강력한 대응을 포기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하도록 만듭니다. 후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경찰력을 동원하여 집회, 시위 현장의 외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그곳을 경찰차로 포위하듯이 둘러쌈으로써 외부에서 집회, 시위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는 등 헌법에 어긋나는 대응을 하는것이 일반화되었고, 강경 시위를 해도 시민들이 예전만큼 호응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항적인 단체는 정부에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거나, 지원금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별도의 지원법에 근거해 출연금 및 보조금 지원, 조세감면 등 세금을 통해 지원을 해주는 박정희가 만든 새마을운동협의회, 전두환이 만든 한국자유총연맹, 노태우가 만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같은 3대 관변단체가 아닌 이상에야 대부분의 단체는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권 내부의 기회 구조에 기대는 '제도화' 중심의 활동 방식은 위기를 맞았다. 아직 제도권 내부의 의제가 되지 못한 구조적이고 사회 개혁적인 이슈들을 다룸에 있어서, 시민단체들에게 익숙한 활동 방식, 즉 미시적 수준에서의 현실적 대안을 찾는 방식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다. 시민단체들, 특히 대변형 단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나 제안이 정치권 혹은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를 압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감시자를 감시한다》p.90
국가의 탄압, 삶의 사유화, 공동체의 붕괴, 시민들의 사회성 위축은 비영리단체의 기업화, 운동의 제도화를 불러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비영리단체는 기업이나 정부처럼 명확한 관료체제를 갖추었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브랜드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기업에서 주주들에게 이익금을 배당하는 것처럼, 후원자들에게 경영가적인 태도로 접근합니다. 다국적 기업들 역시 이런 비영리단체와 연결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후원하려고 합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일지라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영리단체와의 협력은 윤리적이고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고, 좋은 이미지는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북극곰을 구하기 위해 코카콜라를 마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주식회사화된 세계적인 비영리단체의 하향식 운영을 거부하는 운동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공동체단체와 풀뿌리운동은 비공식적이고 위계가 없는 조직을 지향하며, 기업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합니다. 이는 상당한 활기와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구조나 통일성이 부족하며, 장기적인 영향력을 희생해야 합니다. 형태는 더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너무 약하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존재하지 않는 행사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옵니다. 결국 변화는 체제의 틀 안에서, 체제의 도움을 받으면서, 체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수준에서 겸손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은 소비를 통해 착한 일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콜라를 마시면 북극곰을 구할 수 있고, 스타벅스에서 물을 마시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물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잃고 소비로밖에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소비만 해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뿌듯해 할 수 있으며,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얻고 더 높은 매출을 올리며, 단체는 장기적이고 높은 기업 후원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소비자와 기업, 비영리단체는 서로 윈윈하는듯 보이지만, 결국 구조적인 문제와 대면하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때문에 저자들은 주식회사로 변한 비영리단체들은 또 다른 세계라는 대안이나 대안이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대항책이라기보단,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형태를 보인다고 말합니다.


덧글

  • Blueman 2015/05/11 12:14 # 답글

    오호 재미있는 책이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 착선 2015/05/11 18:29 #

    최근에 산 신간들 중에서 꽤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 디지털 해적 2015/05/14 14:14 # 답글

    저도 저자들과 비슷한 의문점들이 있었는데...
    혹시 책에 해결책도 제시하고 있나요?
  • 착선 2015/05/15 23:17 #

    분량이 많은 책은 아니라서.. 해결책은 좀 빈약합니다.
  • 2015/05/14 14: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5/15 23: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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