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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법, 사랑하는 법, 죽는 법 by 착선

『타이태닉호의 비극』과『타이태닉』은 전혀 다른 영화지만 둘 다 배가 가라앉는 장면에서 헤어지기를 거부하는 나이 많은 부부가 등장한다. 1958년 영화『타이태닉호의 비극』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제발, 배에 타." 사람들은 그녀에게 빨리 구명보트로 내려가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한다. "전 한 번도 남편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왜 지금 내가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나요?" 남편은 아내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아내는 룻기에 나오는 말로 자신의 의지를 확고하게 정리한다. "우린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어요. 당신이 가는 곳으로 나도 가겠어요."

1997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타이태닉』에서는 나이든 부부가 배가 가라앉는 와중에도 객실 침대에서 차분하고 단호하게 부둥켜 안고 있다. 물이 차오르면서 침대가 출렁인다. 지금까지 누구라도 한 번은 보았을 법한, 충실을 맹세하는 감동적인 장면이긴 하지만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그저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공동소유자 이시도어 스트라우스도 타이태닉처럼 가라앉는 배에 아내와 함께 타고 있었다. 수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아직 구조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는 구명보트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 아이다에게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애원했다. 8번 구명보트에 탔던 여자들은 그들의 모습과 대화를 모두 지켜봤으며, 그들은 뉴욕에 도착한 뒤 그 사실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이 이야기는 무수한 신문을 통해 퍼져나갔다. 뉴욕 타임스는 이들 부부를 갑판에서 목격한 어느 생존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스트라우스 씨는 아내에게 구명보트에 올라타라고 부탁했지만,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했습니다." 노스다코타롤라의 터틀 마운틴 스타는 "승무원이 그녀를 안전한 위치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는 팔을 뿌리치며 남편에게 매달려 '당신을 두고 갈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라고 전하며 그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

이야기는 반복되며 널리 퍼져나갔지만, 이를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각인시켜준 것은 바로 엘버트 허버드였다. 그는 스스로 등장인물을 상상해내지는 못했지만, 대중의 기호를 제대로 포착해 흥행시키는 감각이 있는 작가이자 출판인이었다. 세기의 전환기에 한껏 들뜬 분위기를 선동하던 전도사 역할을 하던 허버드는, 스트라우스 부부의 애절한 충절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856년 태어난 허버드는 신문기자로 일하다 비누회사에 입사하여 마케팅의 달인이 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수공예품 부흥운동에 영감을 받은 그는 윌리엄 모리스, 존 러스킨과 함께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헌신했다.

가장 먼저 그는 로이크로프트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설립하여 영감을 주는 작품을 담은 아름다운 잡지를 출간했다. 이 잡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유머러스한 그의 훈계조 글이었다. 그는 이러한 글들을 무수히 쏟아냈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는 숙련된 목수들과 도공의 작은 공동체를 만드는 결실을 맺었다. 이들은 예술적인 가구와 도자기 등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냈으며, 이 물건은 로이크로프트라는 라벨을 달고 팔려나갔다. 잡지의 종수도 늘려 월간 문학잡지『필리스타인』과 우아한 삶을 위한 월간 정보잡지 『프라』를 발행했다. 허버드가 쓴 이시도어와 아이다 이야기는『프라』에 실렸다. 허버드는 이 글에서 살아서 고통받는 것보다 우아하게 죽는 미덕을 찬미했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사랑과 충성의 유산을 고스란히 남겨주고 떠났다. 그들은 세 가지 위대한 일을 해내는 법을 알았다. 바로 살아가는 법, 사랑하는 법, 죽는 법이다. 늙고 병든 모습은 점잖지 않다. 그 대신 스트라우스 부부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했다.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행복한 연인이었다. 평생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스트라우스 부부의 이야기는 허버드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도덕을 중시하고 충성을 열렬히 옹호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영화계의 거물이었던 새뮤얼 골드윈과 협상을 할 때도 충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충성 한 되는 지혜 한 말의 가치가 있다." 더욱이 허버드가 충성을 찬미하여 유명해졌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1899년 허버드는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쿠바에서 반란을 일으킨 칼릭스토 가르시아 장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미군 육군 중위 앤드루 로언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필리스타인』을 통해 발표된 이 글은 여러 신문과 소책자에 재인쇄되어 뿌려졌다. 뉴욕 중앙역에서는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인쇄해 배포했다. 미국 육군교본에도 포함되었고, 중학생들이 읽어야 할 글 모음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 글에서 강조하는 충성은 특히 열정적이며,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북돋워주는 것이었다. 별다른 꾸밈 없이 로언 중위가 가르시아 장군에게 매킨리 대통령이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하지만 허버드의 주요 관심사는 군사작전의 세부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그가 로언에 대해 열광적인 존경을 표한 것은 그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보여준 미덕이다. 허버드가 주장한 충성에는, 그 미덕에 대한 경멸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그러한 충성은 종종 경솔함이나 권력에 영합하여 타락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다. 폭군과 마피아와 중간관리자들이 주로 남용하는 충성이다. "네, 무슨 말씀이든 옳습니다!"

허버드의 에세이는 100년 전 이런저런 성가신 요구를 하는 직원들이 귀찮았던 자본가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았고, 그래서 자본가들은 그의 책을 사서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준 것이다. 그런 충성은 대중을 멍청하고 쉽게 속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며, 영리한 사람들이 우매한 대중을 조작하기 위한 초대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사실 허버드가 찬미한 충성은 그렇게 우매한 미덕이라기보다는 현명한 미덕에 가까웠다. 허버드가 로언을 존경했던 것은 임무를 어떻게 완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로언은 맹목적으로 명령을 따른 것이라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능동적인 지식을 가졌기에 묻지 않은 것이다. 그는 솔선했고,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동적 지식을 사용하도록 만든 것은 충성심이다. 그렇다. 충성심은 위대한 영웅의 행동에 영감을 주는 미덕이자, 한 사람의 성품을 만들고 드러내는 사소한 일상의 행동에 상당한 동기를 부여하는 미덕이다.

이것은 충성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충성은 단순히 의무의 규칙이나 목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충성은 우리의 욕망과 경향성에 반하는, 억지의 의무감이 아니다. 충성은 행동을 북돋는 힘이다. 믿음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이해관계다. 충성은 단순히 믿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허버드는 이렇게 말한다. "문명은 그런 개인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갈망했다" 이러한 충성이 100년 전 수백만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진지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허버드의 찬미는 로터리클럽의 시시하고 촌스러운 단편이라고 치부한다. 자신을 계발하라는 뻔한 호소는 탐욕스러운 고용주들이 시골뜨기를 채용하여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강탈수단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허버드가 허풍쟁이가 아니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찬미하는 미덕을 시험하는 궁극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신념을 지켰다. 타이태닉에 탑승했다 함께 세상을 뜬 스트라우스 부부의 사랑을 찬미하고 나서 3년 뒤, 허버드는 아내 앨리스와 함께 뉴욕에서 리버풀로 가는 배 루시타니아에 올랐다. 아일랜드 해안을 벗어났을 무렵, 루시타니아는 독일 유보트가 발사한 어뢰를 맞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구명조끼를 입고 구명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엘버트와 앨리스는 기우는 갑판에 차분히 껴안은 채 서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한 생존자가 나중에 허버드의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았던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버님은 주저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최상 갑판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물속에서 헤어질 위험을 무릅쓰느니 함게 죽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시도어와 아이다는 그런 선택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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