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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된 대문호《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by 착선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리어 왕, 햄릿,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하나라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유명합니다. 그의 작품은 영문학의 정점에 서있다고 칭송받으며, 한 광신도는 오만하게도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꾸지 않을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사후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에 관한 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예술가들이 원하는 것, 불멸의 이름을 얻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저자 잭 린치는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수백 년 전 영국 땅에서 살아가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현재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관한 음모론은 아닙니다. 잭 린치는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셰익스피어로 변화했는지, 또는 발명되었는지를 말합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문화영웅, 셰익스피어는 오롯이 그의 예술성, 작품성을 통해 영웅이 되지 못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은 당시에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더 엄청난 성공가도는 그의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성공한 엔터테이너에서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대문호로의 길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사회는 가톨릭과 청교도 사이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했습니다. 오늘날 기성세대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천박한 취미라며 멸시하는 것처럼, 당시 청교도들은 연극을 천박하고 음란한 문화로 생각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죽은 뒤 청교도들은 충분한 정치적 권력을 획득했고, 그들이 싫어했던 연극을 법적으로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크롬웰이 죽은 뒤 청교도는 몰락했고, 찰스 2세가 돌아와 왕정이 복구되면서, 동시에 연극도 부활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극단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희곡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교도가 지배하는 수십 년 동안 희곡은 단 한 편도 쓰여지지 못했고, 결국 극단의 단장들은 옛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벤 존슨, 프랜시스 보몬트, 존 플레처 등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가장 이득을 본건 셰익스피어였습니다.

'상업성이 곧 작품성'인 것이다. -《피카소 만들기》p.36
셰익스피어 시절의 연극은 넓고 트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왕정복고 이후의 연극문화는 화려한 건물에서 소수의 여유있는 사람들이 비싼 값에 즐기는 고급문화가 되었습니다. 이는 찰스 2세가 두 곳의 극단에서만 연극을 할 수 있는 특허권을 부여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 하비 레벤슈타인이 지적한 것처럼, 한 문화가 인정받기 위해선 하층민을 배제하고 상류층이 문화를 독점함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연극은 있는 자의 품격있는 문화가 되었고, 그 연극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역시 더 높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당시 등장한 출판기술의 발전 역시 셰익스피어의 위상을 높여줬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읽고, 연극에 뛰어든 청년들은 그를 공부하고, 학자들은 그의 작품에 주석을 달면서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모든 사회에서 모든 계층이 인정할만한 훌륭한 예술성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완전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서 생명력을 유지했고, 인기를 얻었습니다. 수백년 동안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셰익스피어가 쓴 것 그대로 공연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각색했고, 그의 작품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변화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3S 정책을 활용한 것처럼, 연극은 정치적 선전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했습니다.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분명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지만,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상, 당시 사람들이 숭상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국다움'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18세기 작가들에게 그것은 전혀 불합리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그것을 원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여기 엄청난 역설을 소개한다. 18세기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셰익스피어는 가장 개선되었을 때 가장 그다웠다는 사실을. - p.192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분명히 인도와 바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지리를 잘못 묘사하는가 하면, 운율은 불규칙했고, 줄거리는 아무렇게나 전개되었으며, 날짜는 잘못 썻고, 말장난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가였다면 신춘문예 예선도 통과하지 못할만한 작품의 약점들은, 모두 그의 장점이 되었습니다. 그 불완성 덕분에 수백 년 동안 비평가들의 논쟁을 거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생전의 기록도 거의 남기지 않은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역시 원전 그대로 남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작품을 즐기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는 큰 플랫폼이며, 대중들은 작품의 2차 창작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들의 셰익스피어는, 그 셰익스피어는 아니지만, 분명히 셰익스피어입니다.


덧글

  • 2016/01/11 15: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21 19: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함월 2016/01/11 22:51 # 답글

    타임머신으로 셰익스피어를 데려와서 자기 작품에 대한 영문학 강의를 듣게 했더니 F 떴다는 단편 소설이 생각나는군요.

    위대한 예술가는 어느 정도 후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걸 포함해서 '그 사람'이겠지요. 본인이 원했건 아니건.
  • 착선 2016/01/21 16:46 #

    재밌을거같은 소설이네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아나그램까지 동원하며 해석하는 형편이니..
  • 따뜻한 허스키 2016/01/12 15:23 # 답글

    우와ㅇㅂㅇㅎㅎㅎ재밌는 책과 알기쉬운 포스팅 감사합니다^-^//
  • 착선 2016/01/21 16:46 #

    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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