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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그림자《우상들과의 점심》 by 착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을 잘 차지도 못했고, 차는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축구선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축구선수의 골에 수만 명이 환호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이후였다. 그 순간 수만 명이 행복해했다. 단 한 명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국가대항전이었다면 수십, 수백만 명에게 행복한 순간을 제공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 아이돌 혹은 우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리고 분명 극소수의 우상들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우상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모든 유명한 사람이 우상은 아니다. 단순히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도 유명해지는 길이다. 하지만 우상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우상에게 투영하는 가치는 때론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이나 마릴린 먼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아인슈타인만큼 뛰어난 다른 학자를 거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마릴린 먼로는 나에게 있어서 전혀 성적인 매력을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런 상징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우상은 대중으로부터 지워지지 않는 영속성을 얻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상, 또는 아이돌의 사전적 의미처럼 일종의 편견, 그릇된 선입관이기도 하다.

문화비평가 대프니 머킨은 우상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완벽한 존재로 생각되는 우상의 그림자를 말한다. 우디 앨런, 존 업다이크, 다이앤 키튼, 마릴린 먼로.. 서양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이름은 들어봤을법한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기자로서 그런 우상들을 인터뷰한다면, 그들의 후광에 눈이 멀어 본질을, 숨겨진 메시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대프니 머킨은 대중이 생각하는 우상의 삶을 넘어서 우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대프니 머킨, 살쪄서 슬픈 대프니 머킨, 상처입은 대프니 머킨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우디 앨런과의 편지를 통해 대프니 머킨은 우디 앨런의 다른 모습, 상처입은 우상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동시에 대프니 머킨 자신을 치유하고자 함이기도 했다.

머킨이 관찰하는 대부분의 우상에 대한 비평이 문화권이 다른 이유로 이해하기 힘든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신 그녀의 방법론, 사물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빛나는 별들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우리 사회에 지워지지 않는 영속성을 획득한 우상들, 그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그리고 대중문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도 될 수 없는 자신이 되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무언가 특별한 것, 부자가 되는 것, 명성이 우리네 인생을 하나의 잣대로 측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행동의 정당성마저 부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프니 머킨의 말대로라면 그들 역시 찬란하지만 동시에 덧없는,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고, 스스로 자괴감이 생기기도 하는 삶,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하나의 인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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