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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학 - Reynolds 수리모형법칙 by 착선


흔히 공학에서는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합니다. 수리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만든것이 수리모형입니다. 모형의 전제조건으로 수리학적 거동이 유사해야 하며 이것을 토대로 모형과 실제현상을 수리학적 상사법칙이라고 합니다. 모형과 실제현상이 완전히 동일할 경우를 완전상사라고 부르며, 이론상으로만 가능합니다.

수리학적인 상사가 이루어지려면 기하학적, 운동학적, 동역학적으로 전부 동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물이 가지고 있는 점성력, 중력, 표면장력, 탄성력중 하나 혹은 두개를 중심으로 실험합니다. 실제 수리현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흐름을 지배하는 힘 하나만을 고려해도 충분합니다.

그중 Reynolds 모형은 물이 가진 점성력이 가장 강할때 사용하는 수리모형입니다. 보통 잠수함의 표면에 미치는 힘이나 관수로내의 흐름현상 분석시 사용됩니다. 이 실험에서는 관성력과 점성력이 동일하다고 가정합니다.


m은 모형식, p는 원형식을 뜻합니다.
Reynolds 모형법칙에서의 물리량비


예문) 축척10:1 모형에서 Reynolds 사용, 물보다 점성5배 밀도 80%인 기름을 사용해 시간비,힘비를 구하기.

점성5배이므로 점성비는 1(원형)/5(모형) = 0.2
밀도는 1(원형)/0.8(모형) = 1.25
Reynolds식에 의해 속도 = 점성비 / (밀도*Lr(축척)) = 0.2 / (1.25 * 10) = 0.016

시간 = 길이/속도 를 이용 시간비 = 10 / 0.016 = 625
F = ma 를 이용 힘비 = (밀도 * 길이^4) / 시간^2 = (1.25 * 10^4) / 625^2 = 0.032

즉 모형에서 측정한 시간은 원형에서의 625배에 해당, 힘은 0.032배에 해당합니다.


아래는 Reynolds란 학자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Reynolds 에 대한 소개글 2005년 11월 한국수자원학회지 -안재현-


유체역학 분야에서 난류는 가장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으며, 고대 이래로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해석이 시도된 것은 오스본 레이놀즈(Osborne Reynolds)에 의해서라는 것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히 레이놀즈는 층류와 난류 흐름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정량화 한 레이놀즈 수(Reynolds Number)를 제안하였으며, 공동현상, 윤활, 상사법칙 등과 같은 유체역학의 대다수 문제들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통해 그 해결책들을 제시했었다.

현대유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본 레이놀즈는 1842년 8월 23일 Belfast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삼대 째 성직자의 자리를 이어오고 있었지만, 1837년에 Cambridge를 졸업하고 Belfast Collegiate School의 첫 교장이자 Essex의 Dedham School의 교장을 지내기도 했었던 석학이었다. 레이놀즈의 교육은 그의 아버지가 Essex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시작되었으며, 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다음 대학에 바로 가지 않고 1861년에 Edward Hayes의 기술회사에서 견습으로 일하며 기술을 익혔다.

그의 공학에 대한 흥미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유년시절 나는 기계학을 사랑했었고, 수학과 물리학의 응용에 달인인 아버지로부터 지속적 관심과 지도를 받는 축복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2세기전의 시대에도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였던 것 같다. 기술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레이놀즈는, Cambridge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1867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레이놀즈는 런던의 John Lawson 기술회사에서 일년간 토목공학자로 일했다.

1868년에 레이놀즈는 26살의 나이로 맨체스터 최초의(영국에서는 두 번째로) 공학 교수가 되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으로 산업혁명의 발생지인 영국에서, 또한 가장 큰 규모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맨체스터에서 공학부 교수 자리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수 모집 지원서에서 레이놀즈는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난 과학의 기초로서의 기계학과 물리 법칙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좋아했었다.” 세상의 변화하지 않는 진리 중에 하나인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레이놀즈도 증명해 보인 것 같다.

레이놀즈는 1905년에 은퇴할 까지 맨체스터 대학의 학장자리를 유지했다. 맨체스터에 있었던 37년 동안 레이놀즈는 기체와 액체의 혼합물이 지닌 성질, 수력기계의 공동현상, 동적응력, 열역학과 열전달 등 물리학과 공학 분야에서 여러 방면에 걸친 연구를 했다. 그는 수리학, 유체역학 연구와 그 응용에 공헌하였으며, 특히 파이프 속을 흐르는 유체난류의 한계를 규정하는 레이놀즈 수와 유체운동의 상사법칙에 대한 발견은 가장 유명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최초로 레이놀즈 수가 사용된 것은 1883년의 “평행한 수로안의 물의 운동을 결정짓는 조건과 평행한 수로안에서의 저항의 법칙에 대한 실험적 연구”라는 논문에서였다.

레이놀즈는 관수로내 흐름이 가시화 및 손실수두 측정을 위해 그림 1과 같은 장치를 이용한 실험을 수행하였다. 물이 큰 수조에서 완만한 종모양의 입구를 통해 긴 직선관로에 유입되면서 유량은 하류의 밸브로 조절되며, 흐름의 가시화를 위해 색소가 종모양의 입구에 투입된다. 작은 유량에서는 색소가 관로 전체에 걸쳐 정상적으로 선과 같은 모양으로 통과하나, 큰 유량에서는 색소의 흐름이 갑자기 파괴되어 단면적 전체로 혼합된다. 레이놀즈는 관경과 수온을 변화시키면서 흐름의 상태가 관경, 직경 및 유체의 점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를 레이놀즈 수(R)로 정의하였다.
레이놀즈는 터빈펌프 연구와 윤활이론 연구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875년 그는 고정시킨 날개를 원심펌프에 이용한 장치로 특허를 받았다. 날개로 만들어진 끝이 넓은 통로는 그 속에 있는 물의 운동에너지를 압력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현재 사용되는 펌프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레이놀즈는 또 다단식 원심펌프를 처음으로 설계했었다.

그는 관속의 층류(laminar flow)와 난류(turbulent flow)사이의 흐름의 변동에 대한 연구를 하다 1886년에 윤활이론을 공식화했다. 그 후 레이놀즈는 난류(turbulent flow)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만들었고 이것은 난류 연구의 수학적 기본골격이 된다.

하지만 그는 강의를 하는 교수로서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었던 것으로 후세에 기억되고 있다. 원자의 발견으로 유명한 Cambridge의 J.J. 톰슨 교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맨체스터에 있을 당시 스승이던 레이놀즈의 강의를 이렇게 회상했다(김우열 역, 2005).

“때때로 그는 상급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면 우리는 10-20분 정도 기다리다 수위를 시켜서 학생들이 기다린다고 전했다. 그는 허겁지겁 가운을 걸치며 교실 문으로 들어서기가 예사였다. 그리고는 책상에 있는 교과서 하나를 집어 들어 아무 곳이나 편 뒤 한 두 개의 공식을 끄집어 내 그것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칠판으로 가서 이를 증명했다. 증명할 때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칠판에 쓰면서 혼잣말을 했는데, 때때로 틀렸다고 중얼거리며 전부 지우기도 했다. 그리고는 새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가 강의가 끝날 때가 되면 지우지 않았단 공식을 마무리하면서 결국 이렇게 하여 교과서가 옳았음이 증명되었다고 결론을 내려 주었다. 이런 방식은 비록 새로운 지식을 알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웠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사람이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까.”
또 한 명의 맨체스터 출신으로 맨체스터 대학의 물리학 교수였던 아서 슈스터 경은 레이놀즈의 강의를 초급 수준이라고 회고했다(김우열 역, 2005).

“오스본 레이놀즈는 강의할 때 주제에서 벗어나서 곤경에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가 곤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몇 가지 우스운 사건도 전해지고 있다. 한번은 계산자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계산자를 손에 들고서 곱셈을 하는데 필요한 상세한 단계를 설명했다. “3 곱하기 4를 간단한 예로 들어봅시다.” 이렇게 말한 그는 적절한 사용법을 설명한 뒤에 말했다. “이제 결과가 나왔습니다. 3 곱하기 4는 11.8이군요.” 학생들이 웃었다. “이 정도면 상당한 근시치군요.” 레이놀즈의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영국의 공학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레이놀즈의 이상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nderson은 그의 저서 “A History of Aerodynamics”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레이놀즈는 높은 이상을 가진 학자였다. 그 시대에 영국의 대학에서 공학 교육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지만 레이놀즈에는 그것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들의 세부 전공분야를 막론하고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특히 고전적 기계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공통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레이놀즈는 1877년 Royal Society의 회원이 되었고, 11년 후엔 Royal Medal을 받았다. 1883년에 I.C.E(Institute of Civil Engineers)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84년에는 글래스고우대학으로부터 명예학위를 받았다. 1900년 초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여 1905년에 은퇴하게 되며, 1912년 2월 21일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그는 기계 기술이 가장 꽃 피운 시기에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이론가이자 기술자였으며, 기계에 관한 훌륭한 직감과 화려한 안목을 수학에 결합시킨 성공한 공학도였다. 또한, “레이놀즈 수”라는 단어를 통해 현대유체역학의 아버지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참고문헌

도날드 그레이 저, 김경호 등 역(2002), 토목유체역학, 사이텍미디어.
월터 그라처 저, 김우열 역(2005), 위대한 발견의 숨겨진 역사, 청림출판.
최영박 등(1995), 현대수리학, 구미서관
http://www.corrosion-doctors.org/Biographies/ReynoldsBio.htm
http://www.uh.edu/engines/epi1529.htm
http://www-groups.dcs.st-and.ac.uk/~history/Mathematicians/Reynolds.html



덧글

  • 부정변증법 2008/08/29 15:19 # 답글

    후덜덜덜... 무시무시한 이과생... 난 문과라서 핑핑
  • 착선 2008/08/29 22:42 #

    언어의 세계가 더 오묘하죠 ㅎㅎ
  • 공대생 2018/12/03 19:09 # 삭제 답글

    죄송하지만 위의 문제는 어느책에 있는문제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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